지난 9회 동안 세계 각지에서 자신만의 모습으로 여러 개의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의 사례를 살펴보았다. 이번 회차에서는 이러한 현상들이 시대적 흐름이라고 짚어내고 있는 책들을 살펴보려 한다.
먼저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더퀘스트, 새라 캐슬러 저. 2019년)를 보자. 이 책에서는 ‘긱 경제(Gig Economy)’라는 용어를 소개한다. '긱‘(gig)은 원래 뮤지션의 공연을 일컫는 말인데, 마치 하루 저녁 공연처럼 일회성으로 하는 일을 의미하기도 한다. 저자인 새라 캐슬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미디어 스타트업인 〈쿼츠Quartz〉의 부편집장으로 있으면서 일의 미래에 관한 기사를 꾸준히 쓰고 있는데, 바로 이 긱경제에 집중하고 있다. 이미 [이코노미스트]는 “10년 후 세계 인구의 절반이 프리랜서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했으며, 많은 이들이 정규직과 풀타임 일자리가 점점 사라져 가는 시대의 도래를 예견한다.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직업을 유연하게 여러 개 갖는 생활방식은 장단점이 있는데, 새라 캐슬러는 그러한 긱경제의 명암을 공평하게 다룬다.
‘한편에서 긱 경제는 더 이상 꼰대 같은 상사도 불편한 출퇴근도 필요 없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경제활동이다. 비교적 희소성이 크고 전문성이 높은 기술을 보유한 사람들, 예컨대 IT 전문가, 프로그래머, 기자, 크리에이터, 그래픽 디자이너 등에게 그렇다. 이들은 한 곳에 얽매이지 않고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면서 경제적 자유를 누린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희소성이 작은 기술을 보유한 사람들, 예컨대 청소원, 운전기사, 단순노동자들에게 긱 경제는 실업과 번아웃에 대한 차악의 선택일 뿐이다.’ - 출판사 서평에서
요즘 한국에서도 플랫폼 노동의 허와 실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취미로 히어로 시리즈에서 앞서 살펴본 성공적인 사례의 주인공들은 삶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노동이 세분화되고 유연 해지는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은 플랫폼 노동의 소비재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다.
쉽게 말해, 긱경제의 새로운 상황에 맞는 공정한 사회 시스템이 보장되지 않으면, 취미로 히어로 하는 삶은 몇몇 선택받은 소수의 특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의 저자 새라 캐슬러는 열린 가능성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두 번째로 소개하는 책은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 (메멘토, 이토 히로시 저. 2015)이다. 앞의 책은 전문기자가 사회를 분석한 내용이라면, 이 책은 일본의 한 젊은이가 실제로 살아본 이야기이다. 저자 이토 히로시는 교토 대학 농학연구과 삼림 과학 전공 석사 과정을 마치고 취업을 했지만 일이 적성에 맞지 않고 너무 힘들었다. 밤낮없이 일한 대가를 받아 월세를 내고 남은 돈은 스트레스 해소용 아이스크림 값으로 탕진했다. 결국 건강이 바닥을 치고, 친구 관계가 파탄 나기 직전에 퇴사하였다.
2007년부터 일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면서 건강을 해치지 않고도 그럭저럭 즐겁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2012년까지 여행, 제빵, 웨딩, 임대, 숙박, 판매, 목공에 관련된 7가지 크고 작은 일을 벌여, 이를 게릴라 식으로 운영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현재 셰어 오피스 ‘스튜디오 4’와 집 한 채를 전부 임대하는 교토의 숙소 ‘고킨엔(古今燕)’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몽골 진짜배기 생활체험 투어’ ‘시골에서 장작가마로 굽는 빵가게 열기’의 기획 운영, 산골 할머니들이 직접 만든 생화 장식 ‘하나아미’의 판매를 돕고 있다. 세미프로페셔널 목수 집단 ‘전국마루깔기협회’와 콘크리트 담을 해머로 직접 해체하는 ‘콘크리트블록 담 해머해체협회’ 등 생업식 길드 단체 설립 활동도 하고 있다.
그의 책을 읽으면 과연 이런 걸로 정말 돈을 벌고 먹고살 수 있을까 싶지만, 그는 진심 자신의 삶의 방식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그가 영향을 받은 후지무라 야스유키(일본의 발명가)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 달에 3만 엔 버는 일을 열 개 만들자” 직업이 10개인 사람이 있을까. 이 책의 저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이러다간 인생을 도둑맞는다’는 생각으로 일이자 생활이기도 하고 놀이가 될 수 있는 ‘생업’ 만드는 게 취미인 그는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생활방식을 권하고 있다. 현실에서 부딪히며 겪어낸 노하우들이 많이 담겨 있다. 물론 앞서 언급한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에서 보여주는 사회적 접근은 부족하지만, 실제 살아낸 이야기이기에 힘이 있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책은 ‘폴리매스’(안드로메디안, 와카스 아메드 저. 2020)이다. 그의 주장은 간단하다. ‘한 우물을 파면되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한 개 이상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갖고 그것을 결합하는 능력이 있는 ‘폴리매스’(POLYMATH : 원뜻은 박식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우리는 오랜 세월 한 우물을 파는 ‘전문가’가 되어야 진리를 발견하고, 자아를 찾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가르쳐왔다. 하지만 전문화 시스템은 이미 시대에 뒤처진 시스템으로 무지와 착취와 환멸을 조장하고, 창의력과 기회를 억누르고, 성장과 발전을 방해한다.
시대는 변했다. 새로운 지식이 샘솟듯이 넘치고 있다. 지식의 반감기는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AI, 로봇 등 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현시대는 한 가지 우물만 파면 생존도 어려워질 것이다.
이제는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다양한 영역에서 출중한 재능을 발휘하며 방대하고 종합적인 사고와 방법론을 지닌 사람. 그들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경계를 허물고, 연결을 통해 창의성으로 이끌며, 총체적 사고와 방법론을 사용하여 시대를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바로 ‘취미로 히어로’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옛말에 ‘열 재주 가진 자가 밥 굶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세 책 외에도 미래를 읽어보려는 많은 책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열 재주를 즐기며 골고루 섞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자가 주인공이 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요즘 한국에서 불고 있는 ‘부캐’열풍과도 무관하지 않다. 얼마 전 배우 한예슬은 자신의 SNS를 통해 ‘나에게 가장 안 어울릴 것 같은 부캐를 추천해주세요’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에 팬들은 농부, 한문 선생님, 트로트 가수, 현모양처, 백댄서 등을 언급했다고 한다. 부캐가 너무나 당연하고 매력적인 면모로 다가온 시대이다. 당신은 어떤 부캐들을 섞어 자신만의 풍성한 삶을 그려갈 것인가.
글쓴이: 이재윤
늘 딴짓에 관심이 많았다. 과학고를 나와 기계항공 공학부를 거쳐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했지만, 동시에 인디밴드를 결성하여 홍대 클럽 등에서 공연을 했다. 영혼에 대한 목마름으로 엉뚱하게도 신학교에 가고 목사가 되었다. 현재는 ‘나니아의 옷장’이라는 작은 문화공간을 운영하며 Art, Tech, Sprituality 세 개의 키워드로 다양한 딴짓을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전자음악 만드는 일에 푹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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