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대중문화 읽기] 죽음이 죽은 시대, 기독교의 의미를 찾아서 - 영화 <부활: 그 증거>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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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무르>의 스틸컷

영화 <아무르>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온 비둘기를 대하는 조르주의 태도였다. 아내 안느가 죽어가던 어느 날, 조르주는 집안에서 비둘기를 발견하고 황급히 밖으로 내보낸다. 있어서는 안 될 불결하고 불경한 것을 내쫓는 듯. 비둘기가 기독교에서 성령을 상징하는 것과 달리, 이 영화에서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르주는 안느를 죽음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안느는 자기 자신으로서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삶을 통제했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죽어가는 자의 고독』(1982)에서, 서구사회가 문명화되면서 죽음이라는 불편한 사건이 격리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급격한 근대화는 성스럽고 신비스러운 것들의 세속화를 수반했다. 죽음에 의미를 부여해온 종교가 사적 영역으로 이동한 것처럼, 죽음 역시 일상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죽음은 한 인생에 필연적으로 찾아오지만,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삶의 공간에서 은폐되고 분리되어 악취 없이 신속하게 수습되곤 한다. 


종교가 세속화되고, 죽음이 죽은 시대에, 죽음 이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것은 흥미로운 점이다. 10월 31일, 해마다 돌아오는 할로윈데이는 어느새 우리의 삶의 일부로 자리하게 되었다. 아이들이나 청년들의 놀이문화로 국한되는 것을 넘어서 10월이 되면 할로윈 상징으로 장식한 것들을 쉬이 발견할 수 있다. 마치 우리네 동지에 팥죽을 쑤어 역귀를 쫓았던 것처럼, 할로윈은 켈트족이 가을의 수확을 감사하고 새해의 행운과 풍작을 기원하며 으스스한 복장을 입고 악령과 악마를 몰아냈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물론 지금은 본래의 의미보다 재미와 자본의 논리가 더욱 작동하는 것이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제도 종교, 기성교회를 벗어나려는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 즉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흐름이 대중문화의 상업화 경향과 만나면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독교라는 종교란, 죽음이란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종교는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영화 <부활: 그 증거>에서 권오중 배우와 이성혜 배우, 책 『내려놓음』의 저자 이용규 목사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그 답을 찾아 나선다. 21세기 종교의 나라 인도의 갠지스 강 바라나시 화장터에서, 로마시대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예배한 카타콤 무덤으로, 그리고 그 당시 사도 도마가 순교했던 인도 첸나이로. 모두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경계이나,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저마다 다르다. 인도인들이 고통스러운 삶을 끊어내기 위해 갠지스 강물로 향한다면, 초대교회 교인들은 죽은 시신 곁 카타콤의 어둠 속에서 부활 소망을 갖고 빛 되신 그리스도를 예배했다. 옆구리 상처를 만져 예수의 부활을 믿게 해달라고 했던 사도 도마가 순교했던 인도 첸나이에서는, 상처가 상흔이 되고 의심을 넘어서 증인이 되는 도전을 전해준다. 영화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을 소개한다. 20번도 견디기 힘들다는 항암치료를 80번이 넘게 받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살아가는 또 다른 이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전하는 말기암 환자 천정은 씨다. 

영화 <부활: 그 증거>의 스틸컷 (좌: 이어령 교수, 우: 천정은 자매)

죽음을 잊어버린 것이야말로 현대 종교의 문제라는 이어령 교수의 지적은 영화에서 2천 년의 시간, 인도와 로마, 그리고 한국이라는 공간의 간극을 오가며 제시한 네 가지 주제를 잇는 출발점이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그 너머에 빛이 있다는 것,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유가 그것 때문이며, 기독교는 이를 증언하는 종교라는 것이다. 천정은 씨의 증인으로서의 삶이 우리의 일상성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영화 내내 빛나는 통찰을 전해준 이어령 교수의 말을 기억하면 좋겠다. “삶에 십자가 고통이 없다면 부활은 없다. 죽음을 염두에 둘 때 우리의 삶이 더 농밀해진다.”

 

글쓴이_ 김지혜 목사(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이 글은 <한국기독공보>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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