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 인간의 한계와 희망



반응형

인간의 한계와 희망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아쉬가르 파르하디, 드라마, 15, 2013)

 

최성수 박사


2013<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로 처음 소개된 이란 출신의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스토리텔링 기법은 독특하다. 각종 영화제의 수상이 말해주듯이, 이미 그의 뛰어난 연출 능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영화는 석류의 열매들을 터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꺼내는 것과 같은 수고를 기울이지 않으면 이해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다. 조연급 배우의 연기와 대사라고 해서 간과하면 이야기 전체가 흐트러진다. 두꺼운 껍질을 벗기고 나면 얇은 막 사이로 알알이 붙어 있는 석류들처럼 모든 이야기는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앞서기도 하고 뒤서기도 하고 때로는 머물러 있으면서 어느 것 하나도 독립적으로 있는 것이 없다. 소재와 관련해서는 전작과 공통적인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데, 이혼을 준비하는 부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것이 그렇다.

의미에 따라 번역된 것으로 보이는 제목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의 원제는 과거이다. 프랑스어로 제작된 이번 영화에서 단연코 돋보이는 점은 시간 특히 과거의 의미에 대해 성찰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과거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사람은 누구나 과거를 갖고 있으면서 현재를 산다. 비록 과거를 공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현재가 된다. 미래는 말할 것도 없다. 영화는 과거의 영향권에 있는 현재의 다양한 모습을 추적한다.

 

테헤란에 살고 있는 아마드는 과거 자신이 살았던, 그러나 4년 전에 떠났던 파리의 한 공간으로 다시 찾아온다. 재혼을 위해 이혼 소송을 조속히 마무리할 것을 아내 마리가 요청했기 때문이다. 아마드의 과거는 감춰져 있고, 치워져 있으며, 가능한 한 빨리 정리되어야 할 것들이다. 과거를 정리하러 온 아마드는 자신의 과거가 마리에게는 여전히 현재로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또한 예기치 않은 상황에 부딪히면서 자신이 부재했을 때 일어났던 과거 때문에 가족이 힘들어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과거의 남편이었던 아마드는 마리의 현재에 여전히 의미를 갖고 있었다. 호텔을 구하지 않고 집에 머물도록 했던 일이나 4년 전에 떠난 남편의 짐을 처분하지 않고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점에서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또한 그와의 관계에서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는 것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녀의 공통의 기억 속에 있는 과거는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기 위해 빨리 정리되어야 할 것들이다. 이것은 집안의 가구들을 새롭게 배치하고 또 페인트칠을 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현재는 세탁소를 운영하는 사미르와 살고 있으나, 그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과거로 인해 미래로 가는 길은 평탄치가 않다. 왜냐하면 사미르의 아내가 자살기도 후 후유증으로 혼수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때와 흔적들을 지워버리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그에게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아내는 결코 지울 수 없는 과거이다. 마리의 첫 번째 남자에게서 난 딸 루시는 엄마의 과거 남성 편력에 대해 불만을 품고 사미르와의 관계를 불신한다. 그래서 둘 사이의 관계를 사미르의 아내에게 폭로하였고 그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였다고 믿고 고통의 나날들을 보낸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었다. 자살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평소에 남편과 살가운 관계를 갖지 못하며 지냈던 아내가 사미르와 세탁소 여직원과의 관계를 의심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오해였지만 루시에게는 쉽게 지울 수 없는 과거였다. 이 일에 대한 그녀의 트라우마는 그녀뿐만 아니라 엄마와 새로운 남자와의 삶을 힘들게 만들었다.

이처럼 영화는 비록 과거는 지나간 것이라도 결코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고, 현재와 미래는 여전히 과거에 매여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를 잊고 미래를 위해 새롭게 출발하자고 사미르가 말하지만, 마리는 과연 그것이 가능한지를 반문한다. 과거를 깨끗하게 정리하지 않고는 새롭게 출발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결국 영화는 과거의 영향권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서 어떻게 새로운 시작이 가능할까를 묻는다. 그리고 코마 상태에 빠져 있는 아내가 남편 사미르가 좋아하는 향수를 맡고 반응하면서 남편의 손을 붙잡는 마지막 장면은 현재는 결코 과거와 단절될 수 없다는 메시지로 독해가 가능하다. 과거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으나, 어떻게 해서든 새로운 시작을 위해 과거를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읽는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으로서 도대체 가능할까? 이것이 영화를 매개로 우리가 제기하는 질문이다.

 

바로 이 질문과 관련해서 생각해볼 때, 과거를 깨끗이 정리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과거는 더 이상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맡겨져야 할 영역이다. 우리 스스로 정당화하거나 합리화 할 까닭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나님에게 돌아서서 우리의 과거를 받아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해결해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뿐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칭의에 대한 신앙이다.

이 메시지는 기독교 신앙에서 회개 혹은 중생과 맞닿아 있다. 기독교에서 새로운 시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능하게 되는데, 그분과의 만남과 그분과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는 것을 두고 우리는 중생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과거는 그분의 손에 붙잡히게 되고,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통해 펼쳐지는 미래를 향해 갈 수 있을 뿐이다. 현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희망 가득히 살아가는 인간의 공간이지만, 미래는 하나님의 약속이 열어주는 공간이며 또한 성취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향해 현재를 희망 가득 안고 살 수가 있는 것이다.

 

반응형
카카오스토리 구독하기

게 시 글 공 유 하 기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밴드

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미지 맵

    웹진/문화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