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송가(Battle Hymn)>



반응형

믿음으로 비행하는 삶

<전송가(Battle Hymn), 더글라스 서크, 드라마, 1957)

 

<전송가>는 대한민국 공군과 고아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목사인 딘 헤스의 자서전에 기반을 둔 것인데, 사실과는 다르게 연출되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사실을 재현하는 기록영화가 아닌 이상 영화의 속성상 극적인 표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지에만 집중하는 것이 더욱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사실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자서전을 읽으면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아닌 곳에서 촬영되었고 또 한국에 거주하지 않는 배우들이라 다소 어색한 부분은 흠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영화는 한국 전쟁과 전후 전쟁고아들의 실상을 미국인들에게 알리는 데에 크게 일조했을 뿐만 아니라 당대 스타 배우인 록 허드슨이 주연으로 출연하여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야기는 그의 특별한 이력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는 1941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을 계기로 미공군 조종사로 입대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러나 자신의 비행기 폭격으로 독일의 고아원 내 수 십 명의 아이들이 사망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심한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당시의 전투기 기술로는 공격대상물을 식별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오폭은 흔히 있는 일이었고 그래서 비교적 쉽게 합리화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헤스에게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아있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목회 현장으로 돌아왔지만, 헤스 목사는 깊은 죄의식에 시달리는 상태에서 건강하게 목회할 자신감을 상실한다. 그래서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아내를 포함한 교회 관계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시 공군에 입대하여 한국군에게 새로운 전투기 무스탕의 기술을 전수해주기 위해 교관의 신분으로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전투기 훈련을 시키는 중에도 북한군의 위협적인 진격을 보고 받을 때는 기상의 악조건을 마다하고 훈련기(그의 비행기에 새겨져 있는 信念鳥人은 원래 “By Faith I fly”를 번역한 것이다)를 가지고 직접 출격하여 공격함으로써 적군의 이동시간을 지연시켰다. 한국 공군의 역사에 길이 남을 몇 가지 에피소드를 전해주면서도 영화가 특히 집중하는 부분은 그가 주둔했던 지역의 주변에 떠도는 고아들을 돌본 일과 중공군의 공격에 밀려 후퇴할 수밖에 없었을 때 수많은 고아들을 제주도로 수송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일이다.

목사의 신분으로서 군목이 아닌 현역으로 공군에 입대한 것도 그렇지만,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다시금 공군에 입대하게 된 동기가 무엇보다 궁금했고 목사의 선택으로서 그 정당성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일에 그토록 헌신하게 된 까닭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자서전을 구할 수 없었고 또 영화에서도 명료하게 제시되고 있지 않아 확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입장은 못 된다. 영화적으로는 고아원에 대한 오폭 때문에 생긴 죄책감으로 더 이상 목회를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자 그 대안으로 선택한 것으로 표현되었다. 어떻게 보면 마치 영화 <미션>의 멘도자가 노예 상인으로 있다가 믿음을 가진 후, 과거의 잘못을 씻기 위해 속죄의 길을 걷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데, 개신교 목사로서 공군 재입대와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일과 관련해서 자속 행위의 가능성을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위해 그렇게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 오폭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이었음에는 분명하나, 어떤 동기에서 시작되었든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도 그는 당시 전쟁고아들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는 사실이다.

고아들을 대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은 거의 본능적이었다. 군이 주둔하는 곳에 아이들을 수용하는 것이나 군 보급품을 아이들에게 공급하는 일은 군법상 허락되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머무는 곳을 폐허가 된 인근의 절터로 옮겼으나 아이들의 생명을 위해 보급품을 사용하는 데에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을 때, 아이들을 그냥 놓아두면 모두가 희생당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그는 아이들을 제주도로 옮기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수송기 마련을 위해 애를 썼다. 결국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 그의 노력은 상관을 감동시켰고 결국 수송기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수 백 명의 고아들은 제주도로 피신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게다가 고국으로 돌아간 후에 쓴 자서전이나 영화를 통해 받은 인세 전부를 자신이 세운 고아원에 기부할 정도로 고아에 대한 그의 관심은 남달랐고 또 지속적이었다. 그의 오폭으로 인해 발생한 희생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의 실수는 결과적으로 또 다른 어린 생명을 구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우리는 믿음 생활에서 종종 한편으로는 좋은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은 일들을 만나면서 양자의 관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일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말했다. 믿음으로 대한민국 항공을 비행했던 딘 헤스 대령의 생명을 위한 헌신에는 과거의 상처가 큰 배경이 되었다.

 

한편, 목사로서 전쟁에 참가했던 것과 관련해서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비슷한 문제의식으로 논란이 되었던 영화로 <미션><머신건 프리처>가 있다. 두 영화 모두 격렬한 토론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머신건 프리처>의 실제 인물 샘 칠더스 목사는 아프리카 수단의 내전의 와중에서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방어차원을 넘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반정부군을 공격하기도 했다. 과연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목사가 총을 드는 것은 타당한 일일까? 이것은 마치 의사가 아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적군을 안락사 시키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전쟁에 대한 교회의 태도를 포함해서 전쟁 상황에서 목사의 윤리 등 다양한 문제의식으로 토론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반응형
카카오스토리 구독하기

게 시 글 공 유 하 기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밴드

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미지 맵

    웹진/문화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