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복음주의자들의 예전적 결핍을 드러낸 코로나 바이러스 By Mike Fr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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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른 교회 예배에 갔는데, 주위 사람들과 소그룹 모임을 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상 참지 못할 같다. 'Zoom모임'과 '사회적 거리를 둔 워크숍', 이것이 교회가 코로나 기간에 있는 전부인가? 찬양과 설교를 복음주의 교회의 예배는 단순한 세미나 모임에 불과하다. 기독교 예전에 있어서 복음주의 예배는 이렇게 결핍을 드러내는 것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논쟁거리가 있는 복음주의 용어에 대해 먼저 정의할 필요가 있다.

역사가는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복음주의 기독교인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에 빌리 그레이엄 복음주의를 정의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그는 "사실 이는 나도 다른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복음주의자도 용어를 설명할 없었던 것이다.

복음주의라는 용어에 대해 우리가 말할 있는 가지는 '말씀에 대한 사랑'과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용어 자체는 헬라어, "복음"또는 "좋은 소식" 의미하는 '유앙겔리온(euangelion)'에서 파생되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복음주의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왕이자 구원자라는 메시지를 믿고 헌신하는 사람, 교회 또는 조직을 일컫는다. ,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이다.

그러나 용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했다. 개혁주의자들은 1500년대에 종교개혁에 의해 탄생한 반가톨릭 교회를 설명하기 위해 라틴어 형태의 복음주의 용어를 사용했다. 이들은 스스로 말씀을 읽고, 교회의 허가가 아닌 개인의 믿음에 의한 칭의를 믿는 기독교인들이었다.

이후 복음주의는 '대각성 운동(Great Awakening)'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와 '조지 휫필드(George Whitfield)'의 지옥불과 유황 설교 덕분에 '부흥주의(revivalism)'와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복음주의자들이 스스로를 '거듭난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면서, 복음주의자는 올바른 말씀을 믿는 사람만이 아니라 말씀이 그를 다스리고 말씀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역사를 통틀어 복음주의자들을 일관되게 정의해 가지는 '예전에 대한 불신'이었다.

기도, 암송, 축도, 성가와 같은 예전은 말씀에 기반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예전이라는 용어는 종교의식을 설명하는 사용되었다. 용어 자체는 "라오스"(사람) "에르 "() 조합이며, '신을 달래기 위해 사람들 혹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행해진 공공의 사역 실천'을 의미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만큼 달랠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기독교 예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고안된 의식적인 실천 행위들이다.

그리고 이에 관해서, 복음주의자들은 특별히 성공회가 "낮은 교회"캠프라고 부르는 것에 해당된다. , 설교를 가장 중시하고 성례전, 교회 의식, 교회 권위는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 것이다. 복음주의자들은 개개인의 성도가 말씀을 듣고 그에 응답하는 데 있어서 목회자가 중간에서 방해하는 일을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들이 선호하는 예배 형식이 찬송가와 복음성가를 부르고 설교를 듣는 것과 같은 말씀에 기반을 실천을 포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만찬 혹은 성례전을 중심으로하는 기독교 예식조차도 많은 복음주의 교단에서 소홀히 여겨지고 있다. 성만찬은 가끔씩 거행되거나 혹은 찬송과 설교 사이에 잠시 진행되는 정도일 뿐이다. 또한 종종 성만찬을 위해서 또 다른 설교를 통해 그것을 설명하기도 한다. 역시  설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주의자들은 분명히 그들의 강점을 발휘하긴 했다. 그들은 찬송과 설교를 예술의 형태로 만들었다. 복음주의 찬양은 '힐송'과 '베델' 등의 앨범들을 통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새로 출시된 찬양 품질에 대해 복음 주의자들이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또 다시 말씀에 관한 것이다!

마치 설교는 복음주의자들에 대한 전부인 듯하다. 이러한 점 때문에,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봉쇄 상태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역과 삶으로 되돌려 놓았다.

지역 사회의 제한 정도에 따라 교회들은 예배를 완전히 온라인으로 송출하거나 일부 대면  온라인으로 드리는 하이브리드의 형태를 제공한다. 복음주의자들이 직접 만나는 곳에서도 모일 있는 인원수는 제한되어 있고 회중 찬송은 금지되어 있다. 게다가 Zoom이나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설교를 길게 하기 힘들다. 최근에 나는 교회 성도들이 기간 동안에 짧은 설교를 얼마나 즐기고 있는지에 대한 글  적이 있다.

노래도 하지 않고 짧은 설교를 한다면 복음주의자들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예배에 일반적으로 소요되었던 60~90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일부 복음주의 교회가 지역사회의 권위를 무시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위기는 복음주의자들이 행해온 예전이 얼마나 결핍을 갖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많은 복음주의 교회가 선호하는 것은 Zoom 소규모 회의나 사회적 거리를 혹은 마스크를 채로 모이는 소그룹 모임이다.

나는 최근에 교회 예배에 참석하였는데, 짧은 설교에서 제기된 질문들을 나누기 위해 소그룹 분반 모임으로 서너 나뉜 적이 있다. 이는 마치 세미나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말씀은 훌륭하다. 나는 말씀을 통해 산다. 그러나 누가 말하고, 듣는 것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는가?

나는 최근에 온라인에서 교회의 문구를 보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하나님께 해당되지 않는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자.” 처음에는 이것이 하나의 귀여운 교회 간판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이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맞는 말이이기는 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하나님께 적용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이 내가 교회 예배에 참석할 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좋은 생각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기독교 예전이다.

나는 예배의 실천과 상징들 자체가 예배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불안을 이해한다. 또한 초기의 힘과 의미를 잃은 오래 지난 암기된 듯한 의식을 거행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적인 팬데믹이 복음주의자들의 예배에 대한 제한적인 시각을 직면하게 하고, 그들이 종교적 상징과 이미지의 사용, 기도와 회중의 응답 암송, 양초와 향의 사용, 금식과 잔치 등과 같은 기독교의 전통적인 실천들을 회복하게 만들 있게 되지 않을까? 

만약 당신이 복음주의자라면 당신의 교회가 매년 진행되는 예전 달력을 아직 채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있다.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응답 송가(antiphons)', 성인을 찬미하는 '성가(kontakia)' 또는 동방정교회에서 쓰이는 '짧은 찬송가(troparia)' 등의 사용을 꺼릴 것이다.

그렇다면 회중에게 단순히 앉아서 듣고 관찰하게 하는 대신에 함께 적극적으로 낭송하고, 응답하고, 앉고, 일어서고, 무릎 꿇고 등을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

회개하며 무릎을 꿇는 것이 복음적인 것일까? 정말 기도문을 외우거나, 죄를 고백하거나, 촛불을 켜거나, 미로를 걸으면 나의 자격증을 잃게 되는 것일까?

성찬식을 그것을 설명하는 또 다른 설교로 덮지 말고 조금만 오래 머무르도록 하자. 한동안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더라도 결코 거리감이 없는 우리의 친구이자 왕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자.

Mike Frost
나는 학문 활동에서 20년 된 베테랑이지만, 여전히 자신을 학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직업란에는 교사라고 적는다. 시드니에 있는 Morling 대학에서 그동안 가르쳤으며, 현재는 선교학 과장을 맡고 있다.

Churchleader.com에 게시된 "Coronavirus Has Unveiled the Liturgical Poverty of Evangelicals"
문화선교연구원에서 번역하여 한국교회에 공유한다. (번역자: 이세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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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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