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미국 교회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온라인 상의 교회는 카메라에 직접 대고 말하는 것이다. 온라인 상의 교회는 상호 작용하는 것이다. 온라인 상의 교회는 성장하고 있는 온라인 회중을 양육하고자 하는 의도적인 노력이다.
영상을 스트리밍 하는 것은 수동적인 것이다. 영상이 스트리밍(실시간 또는 녹화) 되는 동안 시청자는 참가자가 아닌 관찰자가 된다.
일부 추정에 따르면 “정상”으로 돌아가는 데는 3-4년 정도가 걸릴 수 있기 때문에, 교회는 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물론 정상화라는 것이 애초에 가능하다면 말이다.
최근 목회자들과의 대화를 토대로 살펴보면, 통상적으로 교회 성도들 중 약 30 %가 현장 예배에 출석하고 있다. 반면, 온라인 상에서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현저히 더 많다. 실제로 대부분 교회는 일반적으로 예배에 출석하는 인원보다 온라인 상에서 출석하는 숫자가 더욱 높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있다.
어제 나와 이야기를 나눴던 한 목회자는 1년 전까지만 해도 550명이 예배에 출석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200명 정도가 현장에서 예배하고, 1,600명 이상이 온라인 상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과연 이러한 온라인 회중을 어떻게 양육하고 있을까?
온라인 상의 교회는 단순히 현장 예배를 스트리밍하는 것이 아니다
온라인 예배에서는 화면을 더욱 가깝게 잡을 필요가 있다. 예배 시간은 더욱 짧으며, 설교는 45분이 아닌 20-30분에 가깝다. 설교가 거실에 있는 화면으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목회자는 카메라에 얼굴을 바짝 대고 말해야 한다. 넓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하는 것과 작은 화면을 향해 말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교회는, 사람들이 현장에서 직접 예배하기 위해 다시 모이기 전까지 온라인 상에서 교회를 구현해 나가는 일을 잘 해왔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이 현장에 직접 예배하러 돌아오니, 그 숫자가 회중 전체 중에 극히 일부일지라도, 온라인 상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은 무시하고 모인 소수를 향해서만 말씀을 전하려는 유혹이 불쑥 엄습하는 것이다.
이는 당연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잘못된 생각이기도 하다. 목회자가 예배실에 모인 사람들을 무시할 수도 없고, 동시에 집에서 화면을 통해 예배하는 다수의 회중을 수동적으로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3-40년 전, 교회들이 전통적인 예배에서 현대적인 예배로 전환하던 시기가 생각난다. 당시 많은 교회들이 변화를 즉각적으로 수용하지 못했었다. 현실적으로, 그 일로 교회 내의 핵심 멤버들이 소외를 느끼게 되면, 헌금이 줄어들고 목회자는 해고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교회는 전통 예배와 현대 예배를 따로 따로 병행하였다.
몇몇은 “블랜디드(혼합)” 예배를 시도했지만, 스튜어트 브리스코(Stuart Briscoe)는 “컨템포러리(현대적인 것)와 트레디셔날(전통적인 것)을 섞으면 컨템티블(경멸스러운 것)로 끝나지요!”라고 말한 적이 있지 않은가.
현장 예배를 단순히 스트리밍 하는 작업만 한다면, 경멸스러운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현장에 직접 모인 사람들을 무시하고 카메라만 바라보고 말씀을 전한다면, 사람들은 TV에 나오는 설교자를 보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모여 있는 회중을 향해서만 말씀을 전하고 온라인 상의 회중을 무시한다면, 결국 그들을 놓치게 될 것이다.
나는 교회가 두 가지 예배 스타일을 다 채택해야 하는 시기에 도달했다고 믿는다. 바로, 현장 예배와 온라인 예배이다. 현장 예배는 스트리밍 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장에 직접 나와서 예배하는 사람들을 위한 예배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예배는 온라인 상의 회중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지는 것이다. 카메라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고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 예배는 방식에 있어서 더욱 간결해야 하고, 상호작용에 있어서는 더욱 풍성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온라인 예배는 사람들을 관찰자에서 참여자로 독려해야 한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여기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저기 밖에” 있는 사람들이 더욱 많다. 그리고 한동안은 이러한 시국이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상의 교회는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1년 전 까지만 해도 온라인 사역은 그저 “색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2020년을 맞이하면서 온라인 사역은 “필수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지난 몇 달 동안, 교회는 온라인 예배를, 정상화가 되기 전에 임시적으로 붙여 놓는 반창고 정도로 간주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 시기가 언제 끝나고 정상화가 될지, 또한 무엇이 정상화인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물론 온라인 상에서 더 큰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위안이 된다. 통계를 살펴보면 이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교회는 온라인 상의 회중과 어떻게 연결/소통하고 있는가? 그들에게 어떠한 다음 단계들을 제공하고 있는가?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는가? 매 주말이 되면 방문하는 사람들을 환영해야 하고, 이메일이나 문자로 그들의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현장 예배를 찾아오는 방문자들을 대하듯 그들에게 그 다음 단계들을 밟을 수 있도록 도전을 주어야 한다.
새가족 교육을 온라인화 시켜라. 출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을 더 이상 늘어놓지 않도록 말이다. 새가족 교육이 온라인화 되면, 사람들은 일주일 168시간 내내 언제든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성도들을 양육하는 과정도 온라인화 하여라. 예를 들어, 새들백교회(Saddleback Church)의 경우는, 얼마 전 40년 동안 현장 중심으로만 진행되던 양육 과정인 ‘CLASS 101-401’을 온라인화 하기도 했다. (2020년 8월 30일을 기점으로 온라인화 된 CLASS 101을 통해 600명의 새가족 등록을 마침)
정보를 어떻게 수집하고 있는가? 다음 단계들을 어떻게 제공하고 있는가? 온라인 상의 교회는 더 이상 임시방편이 아닌 '교회'이다.
온라인 상의 교회는 소그룹이 필요하다
콘텐츠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은 대화와 공동체도 필요로 한다. 모임들이 현장에서 이루어지든 온라인 상에서 이루어지든, 교회 교인으로 이루어지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로 이루어지든, 그곳에는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온라인 모임을 위해 미리 신청을 받지 말자. 그런 방식은 사람들을 소리 없이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대신에, 그들이 익숙한 플랫폼에서 아는 사람들을 만나도록 초대하자. 그룹들이 온라인 상에서 모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것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간단한 교육 및 지원과 함께 기회와 권한을 부여하면 된다.
새로 만들어지는 그룹들에게 나의 저서 『온라인 상에서 소그룹 인도하기』(Leading Online Small Groups)를 제공하면, 모임을 시작하거나 기존에 있던 모임들을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온라인 소그룹이 있는 교회들은 그렇지 못한 교회들보다 훨씬 더 잘 대처하고 있다.
소화해 내야 할 것들은 산더미 같이 쌓여 있고, 세상은 두려움과 혼란으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자신을 보살펴 주며, 개인적인 방식으로 하나님께 다시 향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야 한다. 온라인 그룹은 대면하여 만나는 것이 어색한 사람들에게 이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
온라인 상의 교회는 돌보고 봉사할 기회가 필요하다
사역을 하다가 보면, 사람들에게는 발산할 통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해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는 모험을 일삼지 않고 반강제적으로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고립은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해를 끼치고 있다. 혼자서 지내며 오로지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은 좋지 않다.
여러 해 전, 한 저명한 정신과 의사 칼 메닝거(Karl Menninger) 박사는 한 컨퍼런스에서 청중 가운데 있던 어떤 사람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누군가 자살 충동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하라고 권하는 것이 좋을까요?” 청중은 메닝거 박사가 즉각적이고 강렬한 심리 치료를 권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신에 메닝거 박사는 대답했다. “나는 그들에게 선로의 반대편으로 가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우라고 말할 것입니다.” 때때로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건강에 좋다.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이다.
우리의 지역 사회에는 일손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 사람들은 음식을, 부모들은 보육을 필요로 한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신의 온라인 회중으로 하여금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일에 교회와 함께 참여하도록 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채울 수 있도록 격려하라.
팬데믹 초기에, 나는 사람들이 (성경에 있는) “서로”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디지털 방식으로 수행하는 목록을 작성했었다. 스마트폰 사용량이 이처럼 엄청나게 늘어났는데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는 일에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어차피 하루 종일 쳐다보고 있는데 말이다.
온라인 상의 교회는 헌금해야 할 이유가 필요하다.
최근 NPR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바나 그룹(Barna Group)의 회장 데이비드 킨나만(David Kinnama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이 지역 교회에 기부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에도 큰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 사회의 일원들에게도 교회가 가져다주는 가치를 더욱 잘 보여줄 수 있어야겠지요.”
위에 나열한 내용들 모두 당신의 온라인 회중에게 확실히 가치를 더해줄 것이지만, 더 나아가 교회들은 그들이 지역 사회를 어떻게 돕고 있는지 반드시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헌금은 어디에 쓰이고 있는가? 결국 집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은 건물이나 직원들이 제공하는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떠나, 사람들은 기부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 필요하다. 너그럽게 나누는 것은 영적인 훈련이고, 영적으로 성숙하다는 표시이다. 교인들이 성숙해짐에 따라 기부도 성숙해질 것이다.
결론
오늘날 미국 교회는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킨나만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의 결과로 많으면 5개의 교회 중 1개의 교회가 영구적으로 폐쇄될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알다시피, 교회들이 다시 다 문을 연 이후에도 온라인 상에서 출석하는 인원은 역대급일 것이에요. 디지털 교회는 지속될 것이라는 말이지요.”
지금 교회들은 두 진영으로 흩어져 있다. 다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자세를 낮추고 코로나바이러스가 사그라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교회들이야 말로 지금 가장 큰 위험에 처한 교회들이다.
반면, 이러한 혼란을 끌어안음으로써 사람들의 실질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고, 현재의 사역들을 재평가하며, 디지털 사역을 위해 스스로의 위치를 조정하고, 더 나아가 온라인 상에서 길을 잃고, 아픔 가운데 있으며, 망가진 모습을 가진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 수 있는 기회를 받아들이는 교회들이 존재한다.
당신의 교회는 어느 진영에 속해 있는가?
알렌 화이트
알렌 화이트는 소그룹 전략, 직원 구조, 자원봉사자 동원, 그리고 영성 형성과 같은 분야들에서 상담하고 연설하는 일을 한다. 알렌은 『기하급수적인 그룹들: 당신의 교회의 잠재력을 깨워라』(Exponential Groups: Unleashing Your Church’s Potential)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http://allenwhite.org 에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Churchleader.com에 게시된 "Streaming Video Is NOT the Same as Church Online"을
문화선교연구원에서 번역하여 한국교회에 공유한다. (번역자: 김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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