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COVID-19 이후 교회로 돌아와야 하는 열 가지 이유 By David Gunder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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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개월 동안 대부분 교회는 대면 모임을 중단했었다. 세계적인 팬데믹, 정부의 규제, 그리고 사회를 섬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모이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리는 온라인 상에서예배’했고, ‘가상공간에서 만났으며, 각종 장비를 동원해 서로 교제를 이어갔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교회로 돌아와야 하는가?

많은 교회가 다시 모임들을 재개하고 있거나, 그렇게 예정이다. 그러나 새롭게 재개된 예배에는 뭔가 익숙하지 않은 느낌을 주는 것들이 있다. 우리의 민감성은 고조되었고, 의견 차이는 수면 위로 떠올랐으며, 어색하고 불편한 의례들과 좌절감을 주는 제약들 견뎌야 한다. 더군다나, 우리가 아무리 안전한 환경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어떤 교인들은 여전히 교회에 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부 성도들은 교회에 오는 것을 꺼려할 있다.

"온라인에서는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고 편리했지만, 반면 재개된 우리의 모임은 너무나 이질적이고 제한적이다. 더 나아가 현장에 참석하는 것이 우리의 육체적 취약성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면, 도대체 왜 우리는 대면 만남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은 타당한 질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답을 내리기 전에, 모이는 것에 대한 우리의 소망이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커지도록, 그리고 그것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특별히 건강상의 이유로 집에 있어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여기 교회로 돌아와야 하는 가지 이유를 소개한다.

1. 형상을 갖고 있는 존재들이기에 교회로 돌아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흙으로 빚으셨고, 하와는 아담의 갈빗대로부터 빚으셨으며, 둘의 연합으로 인류를 만드셨다( 1:26–27; 2:18–25; 3:20). 우리는 남성과 여성으로, 그분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영혼들이다. 우리는 가상 공간에 떠다니는 영묘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의 존재는 그저 화소나 컴퓨터 상의 스크린 이름, (Zoom)이나 페이스타임(Facetime) 화면에 나오는 얼굴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물질 세계를 통해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고 느끼도록 설계되었다.

최근 동안, 우리는 온라인 세계의 힘을 목격했다. 하지만 그것의 한계 또한 동시에 느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어떤 부부도, 결코 장거리 관계 이상적인 것으로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교회 가족 또한 마찬가지인 것이다.

2. 교회는 한 몸이기에 교회로 돌아와야 한다.

성경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1:22–23). 성도는 서로 다른 지체이지만,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4:15–16). 우리는 독립적이 존재들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인 존재들이다. 우리의 영적 은사들은 몸의 성장과 사명을 위해 각자의 역할을 하는, 눈과 귀와 손과 발과 같은 것이다.

비록 거리두기를 하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몸인 것은 맞다. 하지만 다른 모든 건강한 몸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탈구된 채로 지내는 것을 마땅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3. 성령께서 우리를 끌어당기시기에 교회로 돌아와야 한다.

성도들은 단순히 한 몸일 뿐만 아니라 성령 안에 있다( 4:4). 삼위일체 하나님의 번째 위격인 성령은 하나님의 교회에 거하시며, 언제나 우리를 연합으로 이끄신다.

하나님의 성령은 나누어질 없으므로 성도들이 부지불식간에 분리되면 우리는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마치 고무줄을 과도하게 양쪽으로 잡아당기는 것과 같이 말이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고무줄이 다시 원상 복귀 되듯 우리가 함께하기를 갈망하실 것이다.

4. 우리는 영적인 가족이기에 교회로 돌아와야 한다.

교회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양아버지이시므로 사실상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에서 영적인 형제 자매라고 있다(딤전 3:15). 우리의 나이와 성별이 서로 다르지만, 바울은 우리를 아버지와 어머니, 자매와 형제, 그리고 아들과 딸이라고 부른다(딤전 5:1–2). 그런데 가족의 속성은 분리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가정은 함께 살고, 함께 웃으며, 함께 울고, 나아가 서로를 는다. 성인이 된 자녀들이 있는 부모는 자녀들이 집으로 돌아올 행복을 느낀다이처럼 가족은 모두가 모여야 완전한 만족을 느끼기 마련이다.

우리는 시기에 안전 상의 이유로 함께할 수 없지만, 신실하게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손을 뻗어야 한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우리에게 생명을 선사하는 가족 모임을 위해 모이고자 노력해야 한다.

5. 설교 시간은 거룩한 순간이기에 교회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는 파이퍼(John Piper) 설교, 베스 무어(Beth Moore) 비디오, 그리고 라비 재커라이어스(Ravi Zacharias) 짤막한 영상에 익숙한 세대이다. 휴대폰과 스크린과 같은 것들이 이제 우리의 기본 매체이다. 불과 만에 우리는 목회자 및 교회 지도자들이 와이파이와 스크린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에 익숙해졌다.

이러한 디지털 환경에서도, 우리는 설교가 근본적으로 현장에서(라이브로) 이루어지는 거룩한 순간임을 기억해야 한다( 20:20, 27). 물론 설교를 생중계하고 녹화한 온라인 상에 올려 가상 공간에서의 참석자들과 훗날 말씀을 들을 사람들 모두를 유익하게 있다.

그러나 지역에 가족으로 모아진 성도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임무를 맡은 설교자나 신뢰를 받고 있는 목자에게 성령께서 충만한 권능으로 임재하셔서, 목적과 가능성이 가장 충만한 순간에 개인적으로 또렷하게 현장에서(라이브로) 전파되는 것이 가장 좋다. 바로 이런 순간에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양을 돌보게 되는 것이고, 양들은 목자들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순간에 우리는 메시지의 내용뿐만 아니라 찰나에 엄습하는 중력감에 압도되는 것이다. 이처럼 회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들을 ,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과 그분의 장엄한 말씀과 공명할 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공명한다. 함께 즐기는 연회가 혼자 음식을 먹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

6. 함께 찬양하는 것만큼 귀한 것이 없기에 교회로 돌아와야 한다. 

회중과 함께 찬양하는 것과 같은 경험은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95:1–2). 함께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 속 보좌에 다시금 그분을 앉게 해드림으로써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함께 찬양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진리를 새기는 것이고 우리의 심장을 은혜로 달구는 일이다. 함께 찬양하는 것은 우리가 복음 앞에서 조화를 이루는 연합을 상징한다. 함께 찬양하는 것은 우리의 감정들을 하나님께 표현하는 것이다(사실 지금 마음 속에 여러 감정이 쌓여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단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만 찬양을 하는 것이 아니다. 찬양은 또한 서로를 격려하게 만든다. 스크린을 통해서는 서로를 향해 노래할 수 없지 않은가.

물론 취약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에서 회중 찬양이 법에 걸리는 일인 것처럼, 미국에서의 회중 찬양은 감염에 노출될 있는 위험이 있다. 그러나 중국의 지하 교회가 항상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가능한 가장 신실하고 안전하게 그분을 찬양하는 방법을 알아낼 것이다.

우리는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예배드리거나, 소독을 통해 공기를 깨끗하게 하거나, 야외에서 만나거나, 속삭이며 말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고조되는 찬양 소리를 들으실 것이다. 이 때 우리가 함께 모여 소리를 높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7. 우리에게 세례와 성찬이 필요하기에 교회로 돌아와야 한다.

당신의 교회가 지금까지 성례전을 가상적으로 실천했든지 했든지, 모든 성도들이 복음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느낄 있도록 이러한 은혜로운 상징들을 목격하고 맛보아야 한다. 세례와 성만찬은 하나님께서 감각적인 방법으로 소통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가지 예식에서, 우리는 복음을 맛보고 만지고 보고 듣게 된다. 그것이 세례장에 입수함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나는 것이든지, 아니면 찢겨진 떡과 뭉개진 포도를 통해 그분의 희생에 대한 기억을 곱씹게 해주는 것이든지 말이다. ( 28:19; 고전 11:26). 당분간은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실천하는 방식은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마음은 그것들을 더욱 필요로 하게 것이다.

8. 당신에게 주어진 임무가 있다.

당신이 성도라면, 교회로 모일 해야 일이 있다. 목회 활동은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에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마땅히 사용해야 하는 영적 은사를 갖고 있으며, 모든 몸 된 교회는 모든 신체 부분의 활동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12:4–8; 4:15–16; 벧전 4:10–11).

집에서도 여전히 가상공간을 통해 귀 기울이거나 무엇을 주거나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낼 있다. 하지만 우리의 몸이 현장에 있지 않으면, 섬기거나 격려하는 등의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나가는 일들 중 없는 것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9. 우리의 예배 자체가 증언이기에 교회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의 친구나 동료 그리고 이웃들은 매주 우리와 마찬가지로 타락한 세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에게 있는 소망이나 목적과 같은 것들이 없이 그러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매주 도전과 비극에 몸서리치며, 은혜와 진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궁금해한다. 물론 우리가 온라인 상에서 그들에게 손을 내밀 있는 방법들이 있고, 오늘날 하나님께서 새로운 방법들로 새로운 사람들에게 다가가시는 것에 대해서는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믿지 않는 세상에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를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곳에서 가장 은혜롭고 적나라하게 목격될 수 있다.

10. 안부를 나누는 것이 삶을 변화시키기에 교회로 돌아와야 한다.

안부를 나누는 행위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겠다. 단순한 행위가 지금은 과도하게 제한되고 복잡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약 성경 곳곳에서 필자들은 교회를 향해 문안 인사를 하는 것을 넘어,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문안 인사를 것을 권유한다. 이런 인사말들은 단순히 편지 끝에 고정적으로 붙이는 정도의 것이 아니다. 이런 인사말들은 복음이 갖고 있는 화해의 능력을 상징하고 공동체의 역동성을 도모한다. 우리가 서로 인사한다는 사실과 그 방식은 교회의 삶과 증인으로 사는 것의 핵심이다.

행복한 인사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복음의 연합을 되새기게 해준다. 서툴게라도 건네는 인사는 건강한 교회가 차별 대우를 하지 않는다는 선언으로 이어진다. 만약 누군가를 만나서 인사를 하지 않고 피하는 행동은, 우리에게 갈등을 해결하고 화해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상기시켜 준다. 그렇기에 모든 인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반영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재결합하며, 환대를 가능케하고, 이타심을 기르며, 사역의 문들을 열어주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환영하신 하나님을 증거하게 한다.

이런 인사말들에 마스크를 씌우고, 비접촉이 적용되고, 거리두기를 강행할지라도, 우리의 인사는 여전히 모든 교회에서 삶을 형성해가는 작은 사건들일 수밖에 없다.

얼마 우리 교회는 10 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교회 주차장에서 야외 예배를 드렸다. 그날 가장 행복하고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바로 서로 인사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서로 만나야만 한다.

결론

당신은 즉시 돌아올 없을지도 모른다. 당신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욱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지도 모른다. 잠시 동안 거리를 두고 기웃거려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적절한 시기가 되면 하나님의 백성은 다시 모일 있고 반드시 그래야 한다. 나는 당신이 그 때 동참하기를 소망한다.

결국 우리의 모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맛보는 모임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격리, 온라인 생중계 방송, 또는 (Zoom)으로 하는 모임과는 거리가 있다. 그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얼굴 얼굴 만나는 것이며 성도들과 천사들이 충만함 가운데 경배하는 모임이다( 12:22–23; 22:4).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영광의 저택에서 격리되고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정의가 거하는 새로운 세상에서 더불어 살고 일하며 사랑하고 봉사하게 것이다(벧후 3:13).

그러니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다시 모이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리고 그것이 지역 사회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 우리는 서로를 대면하기 위해 다시 모여야 한다.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그날까지 말이다.

David Gundersen(PhD, 남침례신학대학교) 텍사스 휴스턴에있는 브릿지포인트바이블교회(BridgePoint Bible Church)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그는 지난 15 동안 레지던트 디렉터, 부학장, 그리고 교수직을 역임하며 크리스천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훈련했다.

Churchleader.com에 게시된 "10 Reasons to Come Back to Church After COVID-19"
문화선교연구원에서 번역하여 한국교회에 공유한다. (
번역자: 김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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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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