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히어로 #3] 퇴근 후 작가의 삶은 과연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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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마션>은 앤디웨어라는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쓴 소설이 원작이다. 앤디웨어는 게임회사 블리자드에 재직하며 <워크래프트2> 등의 굵직한 게임 개발에 참여했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멈출 수 없었기에 낮에는 코딩을 하고 밤에는 소설을 써서 블로그에 올렸다. 그렇게 3년을 계속한 후, 출판 에이전트에게 연락이 왔고 우리가 아는 영화 <마션>에까지 이어졌다.

Andy Weir 소프트웨어개발자이자 퇴근후 작가(마션)

퇴근 후 작가의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꿈같은 일이리라. 현실에서는 참 쉽지 만은 않은 이야기이지만, 실제 유사한 사례는 많다.

일본의 여성작가 미우라 아야코는 잡화점을 운영하며 틈틈이 쓴 <빙점>이라는 소설로 1964년 아사히 신문의 일천만 엔 현상 공모 소설에 당선되었다. “결혼 후 잡화점을 열었다. 밤 10시에 가게 문을 닫고 그날의 매출을 정리한 후 매일 밤 2시까지 글을 썼다.”(‘이 질그릇에도’ 중에서)

그녀의 작품은 기독교 가치관을 기반으로 인간 내면의 악과 구원의 가능성에 대해 보편적으로 공감할 만한 내용들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한국에서도 드라마 등으로 제작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한국의 경우는 어떠할까?

한국에서도 여러 다른 생업을 가진 작가들이 많지만, 공무원들의 문학상 수상 소식은 꾸준히 들려오는 것 같다. 전북 전주시의회에서 근무하는 7급 공무원 김소윤 작가는 2018년 제6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소설 부문에 당선되었다. 어린 두 자녀를 키우는 워킹맘인 그녀는 “소설을 쓸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평소에 소설에 대한 감정이나 이야기를 마음에 담아 뒀다 매일 밤 조금씩 조금씩 쓴다"라고 말한다.

성수동 주물공장에서 10년간 일해 온 청년 작가 김동식은 2016년부터 인터넷 게시판에 작품을 올려왔다. 적어도 3일에 한 개는 올린다는 생각으로 SF성향의 글들을 올렸는데, 꾸준히 계속된 글들은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과 연결되었고 3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5쇄까지 찍었을 때 3800만 원 정도가 입금된 것을 보고 그는 얼떨떨했다고 한다.

그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반까지 벽을 보고 앉아서 하는 반복 노동 가운데 지루해질 만하면 딴생각을 했다고 한다. 얼른 집에 가서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까지 재미있는 상상과 이야기를 만들어 갔다고 한다.

주물공장에서 일하는 청년작가 김동식의 책

 

너무 장밋빛 이야기만 했는지 모르겠다. 앞서 말했듯 현실은 녹록지만은 않다. 퇴근 후에 직장인의 몸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고 집에 와서도 할 일은 산더미이다. 특히나 육아를 해야 하는 상황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고도로 집중된 상태가 필요한 창작의 작업이 수월할 리가 없다. 그래서 유명한 작가들 중에는 겸업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 지는 말한다. ‘진지한 소설가라면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다’ 사실 그도 20대 처음 취직한 직장생활 도중에 틈틈이 쓴 1966년 《문학계》 신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작품을 계속해서 쓸 수 없다고 판단한 후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아내와 시골로 내려간다. 1년의 생활비를 계산한 후 그것에 맞는 최저비용의 생활을 하며 모든 삶의 패턴을 소설 창작에 맞춘다. 그는 생계를 위한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농사일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채소 한 포기도 기르지 않았다. 감히 농사를 모독할 수가 없었다. 소설을 쓰면서 지을 수 있는 농사는 단 한 가지도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만약 양자를 병행하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거짓 삶을 사는 것이다. 어느 한쪽은 장난 삼아 하는 소일거리일 것이다” - <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겐지 (문학동네)

그는 이러한 장인정신으로 50여 년간 100여 작품을 썼다. 어느 편이 맞는지 쉽게 말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양 편에 다 일리가 있다고 본다. 생업을 가진 작가, 즉 퇴근 후 작가의 장점이 분명 있다.

앞서 말한 공무원 작가 김소윤은 힘든 점은 없느냐는 질문에 오히려 장점이 많다고 말한다. "공무원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소설을 쓰면서 풀고, 반대로 글을 쓰면서 패배감이 들 때는 안정적인 직장이 있으니 '그래, 꼭 소설만 써야 되나' 하는 든든한 마음이 든다"는 것. 그는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시청에서 민원인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니 캐릭터를 만들거나 이야기 구성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소설 쓰는 능력이 기획안 작성이나 창의성이 필요한 업무를 하는 데도 쓸모가 있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 인터뷰 중https://news.joins.com/article/22630164 )

서울대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내놓은 2020년 전망의 핵심 키워드는 ‘멀티 페르소나’였다. 현대인들은 다양하게 분리되는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의 경우 낮의 직장생활과 퇴근 이후 생활이 전혀 다르고 SNS 계정도 여러 개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갖는 개인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개인의 가치가 존중받는 시대가 되면서 ‘덕질’ 문화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최근 가장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 중 하나인 유재석의 ‘놀면 뭐하니’도 비슷한 맥락이다. ‘부캐’(부캐릭터, 본 캐릭터의 반대말)라는 개념으로 유재석은 다양한 변신을 시도한다. 유고스타(드러머), 유산슬(트로트가수), 유르페우스(하프연주자), 라섹(쉐프) 등 다양한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즐거움과 영감을 주고 있다.

인생에 정답이 있겠느냐만은, 많은 이들이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누리는, ‘참 나’를 찾아가는 삶의 여정을 추구하는 모습이 참 좋다. 우리는 돈 벌기 위해, 일확천금을 얻기 위해 이 별에 온 것은 아니다. 조물주가 각자에게 주신 모습을 최대한 아름답게 발현시키며 살아간다면, 하루하루가 충만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다.

 


글쓴이 이재윤
늘 딴짓에 관심이 많았다. 과학고를 나와 기계항공 공학부를 거쳐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했지만, 동시에 인디밴드를 결성하여 홍대 클럽 등에서 공연을 했다. 영혼에 대한 목마름으로 엉뚱하게도 신학교에 가고 목사가 되었다.
현재는 ‘나니아의 옷장’이라는 작은 문화공간을 운영하며 Art, Tech, Sprituality 세 개의 키워드로
다양한 딴짓을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전자음악 만드는 일에 푹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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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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