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빈의 문화칼럼] 시장과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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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선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문화는 공기, 물과 같은 필수적 요소로서 우리의 삶과 행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문화에 대한 분석적 관찰이 우리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정수복은 신유교를 중심으로 무교, 불교 등이 습합(習合)하여 이룬 한국 문화의 성격과 구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한 바 있다. 그는 한국 문화를 구성하는 근본적 문법 요소로 ‘돈과 재물, 권력과 지위, 관능적 쾌락’을 삶의 목표로 삼는 ‘현세적 물질주의’를 지적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무교의 뿌리 깊은 영향력을 반영하는 것이며 한국 문화전통에서 초월적 세계가 현실에 윤리적 긴장을 가져오지 못하는 현상의 배경을 설명해준다. ‘이승이 아무리 나빠도 저승보다는 낫다’는 말이 이를 잘 표현한다.


현세적 물질주의는 20세기 들어 서양 근대 물질문명과의 만남을 통해 더욱 강화됐으며, 1950년 한국전쟁과 전후 시대를 거치는 동안 한국 사회 안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5·16 이후 경제성장 제일주의는 사람들 마음속의 현세적 물질주의를 정당화하고, 시대 이데올로기가 된다. 현세적 물질주의는 ‘출세지상주의’로 이어진다. 바로 내재적 초월을 강조했던 신유교적 문화는 현세적 물질주의와 기복주의를 낳는 기반이 됐으며, 다른 종교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 초월성을 강조한 기존 종교들도 한국 사회 안에서 예외 없을 정도로 물질주의와 출세지상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기독신앙인들에게 있어 문제는 기독교 역시 이러한 문화 앞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는 십자가와 부활을 신앙의 핵심으로 삼고 신앙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실천하며 살아갈 것을 요청한다. 기독교 신앙은 종말론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세계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사회 거의 모든 영역이 시장화되는 현실에서 기독교도 이러한 시장화 논리에 잠식되고 있다는 비판은 치명적이다.


소비문화 안에는 물질주의가 팽배해 있고, 현세적 물질주의-출세지상주의-소비주의-쾌락주의로 구성되는 현실 문화는 자유와 정의, 사회적 공동선 등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문화를 지향하는 기독교 문화와 갈등 관계에 있다. 따라서 신앙인과 교회는 이러한 세상에서 갈등과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현실 문화의 막강한 영향력은 신앙인다움에로의 여정에 값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신앙인들은 이 여정에 동참하는 것을 불편해하고 또 비현실적이라고 여긴다. 결국 현세적 소비문화가 참된 신앙을 향한 여정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필요와 욕망 충족을 목적으로 하는 소비문화가 신앙의 영역마저 주도하고 있는 오늘의 정황이다. 적지 않은 신앙인들은 진리를 추구하는 신앙 공동체로서의 교회보다 자신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이른바 상품성 있는 교회를 요구하는 현실이다. 개인주의적 소비문화에 굴복한 교회는 필요와 욕망에 따라 모였다가 분열되는 이익 공동체로서 전락하게 된다. 결국 교회는 신앙인들이 자신의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종교적 상품을 구매하는 시장터가 될 위험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소비자가 항상 옳다는 소비주의적 문화가 주도하는 풍조는 자신의 유익을 넘어 공동선을 추구함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변혁적 신앙공동체 형성을 방해하는 위협으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 평화를 이 땅에서 실현하는 영적 공동체로 부름 받았다. 교회는 이 땅에 생명과 평화 가치를 증진시키고 사회적 공동선을 이루는 문화 실현의 책임이 있다. 이 책임을 방기하는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언약 공동체가 아니라 시장에서 자기 이익을 취하려는 이익집단에 불과할 수 있다.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인가에 최우선의 관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마 6:33)’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삶의 문화로 일구어내는 신앙인과 한국교회를 소망한다! 


임성빈 장로회신학대 총장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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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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