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문화선교연구원 선정 사회문화분야 10대 이슈
심층이슈 2. 신경숙 표절사태 - '표절'이 있던 자리
[2015년 사회문화분야 10대 이슈]
한국기독교 선정 2015년 사회문화계 10대 이슈 - 종합
2015년 사회문화계 10대 이슈 - 심층이슈1. 헬조선
2015년 사회문화계 10대 이슈 - 심층이슈2. 신경숙 표절 사태
2015년 사회문화계 10대 이슈 - 심층이슈3. 동성애
신경숙 작가 표절사태의 전말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사회ㆍ문화를 쓰나미처럼 뒤덮었던 사회개혁과 역사개조 인식은 1990년대 세계ㆍ국내 정세의 변화와 함께 사그라든다. 예술, 특히 앞만 보고 달려왔던 리얼리즘 계열 문학과 독자들은 구멍 뚫린 판자처럼 헛헛해 했고 한편으로는 과중한 역사의 짐을 벗었으면 했다. 이때 신경숙은 『풍금이 있던 자리』에서 조용하고 속살거리는 듯한 수사를 구사하며 흔적의 아름다움을 “아스라한 슬픔”으로 호명했고, 한 순간에 ‘신경숙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로 출간된 책은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수많은 문학상 수상, 유수의 문학상 심사위원, 『엄마를 부탁해』와 같은 책들로 인해 외국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작가의 자리에 오른다. 이러한 그녀가 올해 6월 ‘신경숙 표절사태’ 1의 주인공이 된다. ‘사태’라는 표현은 ‘4ㆍ3사태’, ‘광주사태’와 같이 수많은 인명이 희생된 사건에 붙는 호칭이었다. 현재는 ‘4ㆍ3항쟁’과 ‘광주항쟁’으로 개명되었기 때문에 동일선상에서 번역해 본다면, ‘신경숙 표절사태’는 ‘신경숙 표절항쟁’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사태는 감히 반항할 수 없는 ‘철벽’, 아무에게나 문을 열어 주지 않는 ‘성채’와 같은 문학계를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2015년 6월 15일 이응준은 온라인 매체인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 The Huffington post Korea>에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이라는 글을 올린다. 1996년에 발간된 신경숙의 단편 「전설」이 1983년 김후란 시인이 번역한 『金閣寺, 憂國, 연회는 끝나고』에 실려 있는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우국」의 일부분을 표절했다는 것이다. 이는 15년 전 이미 문학평론가 정문순이 『문예중앙』 2000년 가을호 「통념의 내면화. 자기 위안의 글쓰기」에서 제기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2000년의 문단에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신경숙 몰아주기’에 동조하고 있었던 문학인들은 눈을 감아 주었고, 『문예중앙』이라는 매체가 문학인들이 주로 읽는 문예지였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로 신경숙의 다른 소설들도 표절의혹이 제기되기는 했지만 화제가 되지 못했으며, 신경숙은 이러한 일들이 작가에게는 “상처”가 되기 때문에 관심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표절의혹이 제기된 구절은 누가 보아도 명백한 유사성이 있었고, 15년 전과는 달리 바로 다음 날부터 문학계와 문화계 심지어 교계에까지 관심이 확산된다. 여기에 일조한 것은 매체의 위력이었다. 순식간에 다수가 보고, 낳고, 낳고, 낳고... 하는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갈 수 있었다. 이응준은 15년 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은 이유를 한국문단이 “책이 많이 팔린다거나 그것과 음으로 양으로 연관된 문단권력의 비호가 있”기 때문이고, 작가들은 “일종의 ‘내부고발자’가 돼버려 자신의 문단생활을 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것이 문학권력이고 신경숙은 문학권력의 중심이기 때문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신경숙의 책을 출판한 출판사 ‘창비’는 6월 17일 「창비 문학출판부의 입장」이라는 보도 자료를 배포한다. 이 자료에서 신경숙은 “오래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이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 「우국」은 알지 못한다”고 표절사실을 부인한다. 또한 창비 문학출판부는 “인용 장면들은 두 작품 공히 전체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중략) 표절시비에서 다루게 되는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이나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을 가지고 따지더라도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약하다”며 두 작품간 유사성은 있지만 표절로 보기는 힘들다는 입장을 내놓는다. 이 자료가 각계에서 비판을 받게 되자 창비는 6월 18일 홈페이지에 대표이사의 이름으로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사과문을 올린다. 그러나 “지적된 일부 문장들에 대해 표절의 혐의를 충분히 제기할 법하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했지만 완전히 표절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정성이 없다며 다시 비판 받는다. 이어서 여론은 ‘창비’와 더불어 국내 유수출판사인 ‘문학동네’ 그리고 ‘문학과 지성’이 문학권력의 중심임을 제기한다. 이들은 신경숙의 작품을 출간함으로 경제이익을 얻은 출판사 2이다. 이 가운데 하나인 『문학동네』의 편집의원 신형철은 6월 18일 <한국일보>에 “같은 것을 다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작가가 이번 사안에 대해 사과”하길 바란다고 말하는 것으로 신경숙의 표절임을 인정한다.
표절의혹을 거부했던 신경숙은 6월 23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표절문제를 지적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모든 게 제대로 살피지 못한 제 탓이다”며 사실상 표절을 인정하지만, “내 땅이 문학이기 때문에 땅에 넘어지면 땅을 짚고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절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그러나 이 역시 확실히 표절이라고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문제가 된다. 그리고 6월 23일 ‘창비’는 「전설」이 실린 『감자먹는 사람들』의 출고를 중단한다. 이후로 여러 단체와 언론에서 토론회, 좌담회, 대담, 인터뷰 형식이 진행된다.
8월 24일 『창작과 비평』 가을호는 “유사성을 의도적 베껴쓰기로 단정할 수는 없다”며 다시 신경숙의 표절을 부인한다. 나아가 8월 27일 백낙청 창비 편집인은 페이스북 글에서 “의도적인 베껴쓰기, 곧 작가의 파렴치한 범죄행위로 단정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며 전도가 유망한 한 작가를 매장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반면 9월 1일 『문학동네』 가을호 서문은 “한 번 제기된 문제를 소홀히 넘긴 것에 대해서 (중략) 어떤 평론가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명징하게 사과한다. 그리고 ‘문학동네 2015 겨울호’를 끝으로 대표와 편집위원 모두 사퇴할 것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10월 7일 「창비주간논평」은 “(신경숙의 글이) ‘무의식적인 차용이나 도용도 포함하는’ 결과로서의 표절”이며, 신경숙 비판이 과도하다는 입장을 밝힌다. 이어 신경숙의 남편 남진우 교수는 『현대시학』 11월호 권두시론에서 “문학예술의 창작에서 표절은 종종 텍스트의 전환, 차용, 변용 등의 문제와 결부되어 숙고해야 할 점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신경숙을 두둔한다.
작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2015년 하반기를 휩쓸었던 신경숙 표절사태는 신경숙 개인과 문단전체에 대한 관점에서 논의가 이루어졌다. 신경숙을 옹호하는 쪽은 문제가 된 구절이 전체가 아닌 일부분이기 때문에 표절이 아니며, 이를 창작 방법의 하나로 보자는 입장이다. 비판하는 쪽은 짧거나 길거나 표절은 표절이기 때문에 범죄이고 작가는 이를 계기로 절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관점은 문단권력 혹은 문학권력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논의들은 주로 여기에 방점을 두고 있는 듯 보인다. 사실 표절과 문단권력에 큰 연관은 없다. 권력이라 여겨지던 작가가 표절했기 때문에 제기된 문제이다. 문학권력이란 각 매체의 신인문학상 혹은 문학상에 있어서의 주도권, 자기매체 출신의 작가 양성과 단행본 간행, 출판사의 구미에 맞는 작가선정, 잘 팔리는 작가의 책만 출판하는 상업성 등등을 이르는 말이다. 이 같은 문학권력의 결과 문학청년들은 출판사가 원하는 정형화된 창작을 할 수밖에 없고 이는 문학의 죽음으로 이어질 것이다.
문학계를 넘어서
신경숙 파문의 영향은 기독교계까지 확산된다. 이전에도 지속적인 움직임이 있었지만,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나 철학인 것처럼 설교하는 것, 저서 혹은 학위논문의 부분표절과 같은 문제가 이를 계기로 다시 제기된다. 신경숙 논란과 마찬가지로 교계 역시 이 문제에 두 가지의 반응을 보인다. 설교는 표절이 아니라 주석이며 좋은 설교는 인용할 수 있다는 입장, 그리고 표절은 범죄행위라는 입장이다. 표절을 ‘주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목회자들의 인식은 ‘2015년 한국사회 주요 이슈에 대한 목회자 및 개신교인 조사결과보고서’((주)지앤컴퍼니, 2015.12.)에서도 드러나 눈길을 끈다. ‘최근 논문, 개인저작, 설교 등에서 표절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런 사람에 대해 어떻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일반성도는 ‘엄격하게 도덕적인 책임을 묻는다’가 높게 나왔지만, 목회자는 ‘비판은 할 수 있지만 조용하게 처리한다’가 높게 나왔다. 두 번째 항목 ‘표절 경력이 있는 사람의 다른 저작물이나 활동’에 대해 목회자의 경우 ‘그 저작물이나 활동만을 놓고 객관적으로 평가한다’가 ‘과거 전력이 있기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게 된다’ 보다 높게 나타났다. 일반성도의 경우 두 항목이 비슷한 비율을 보인다. 이 결과에서도 목회자가 일반성도보다 표절에 대해 온건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회자 자신들이 설교 혹은 저술의 주체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목회자들에게 예장통합의 「목회자 윤리지침(안)」(2015.7.) 발표는 의미 있는 일이라 할 것이다. 목회자 윤리지침은 ‘개인윤리 부분’에 ‘나는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정직한 행위인 표절을 거부한다’ ‘나는 부정의한 방법과 수단으로 학력을 위조하거나 취득하지 않는다’와 같은 조항이 담겼다.
'표절'이 있던 자리
어떤 이는 우리나라를 노래, 텔레비전 프로, 논문 등 각 방면에서 자연스럽게 표절이 이루어지는 “표절공화국”이라고 정의한다. 외국에서는 있을 수도 없다는 글을 읽으며 생각해 본다. 왜 표절을 할까. 한국사회와 작가들의 표절에 대한 문제 인식 부족 때문이라는 진단은 여러 매체에서 제기되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교육’의 측면에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표절은 훔치는 것이며 이것은 죄, 즉 윤리의 문제이다. 교육 초기부터 글쓰기와 말하기의 윤리 교육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도덕으로 내면화되어야 다른 이의 생각을 도둑질하지 않게 될 것이다. 나아가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타인의 것을 도둑질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다양하고 깊이 있는 사고가 책읽기, 쓰기, 토론하기 등의 교육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생략된 채 대학 입시를 위해, 혹은 과제를 위해 글쓰기를 시작하면 쌓여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이끌어내기가 어려워진다. 빈 우물에서는 물을 길어 올릴 수가 없는 법이다. 자신의 세계관과 철학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남의 것을 훔치게 되고 여기저기에서 모은 생각으로 짜깁기를 하게 된다.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을 이끌어낸다. 좋은 글귀를 읽거나 은혜로운 설교는 귀에 들기 마련이다. 이것이 더 나은 작품의 단초가 될 수 있고 깊이 있는 철학의 세계를 불러낼 것이다. 단지 나의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연유되었는가를 일러주는 것은 그 아름다움에 대한 진정성 있는 예의가 될 것이다. 작가, 한국 문단 그리고 한 작가를 사랑했던 독자대중에게 이 사건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 작가가 던진 돌의 파문이 우리 사회에 주는 시사점은 한국사회가 편법이 아닌 적법 혹은 정석의 과정으로 가고 있는 과도기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발전에는 과도기의 과정이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어있다. 어수선한 이 시기를 지나면 한국문단과 문학은 견고하게 자리를 잡을 것이다.
정 경 은 │장로회신학대학교 강의전담교수
[2015년 사회문화분야 10대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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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의뢰 : (주)지앤컴퍼니, 대상 만 19세 이상 일반 개신교인 900명, 담임목회자 100명 기간 2015년 11월 17일~ 25일(9일간) 설문방식 온라인 및 일 대 일 면접조사 표본오차 개신교인 95% 신뢰수준에서 ±3.3%, 목회자 95% 신뢰수준에서 ±9.8%
- 문화연대·한국작가회의, 「신경숙 작가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 6월 23일. 다산연구소, 다산포럼 「문학사에서 표절이란 무엇인가 - 신경숙 사태를 보는 한 시각」, 7월 14일. 문화연대·인문학협동조합, 「신경숙 표절 사태와 한국문학의 미래」, 7월 15일. [본문으로]
- ‘창비’에서 발간된 책들은 『감자먹는 사람들』, 『엄마를 부탁해』 등,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책들은 『외딴방』, 『리진』, 『깊은 슬픔』, 『바이올렛』 등, ‘문학과 지성사’에서 발간된 책들은 『풍금이 있던 자리』, 『딸기밭』,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등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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