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셀마>를 보고 "흑인 참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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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참정권

<셀마>를 보고


감독 에바 두버네이 | 장르 드라마 | 12세 관람가 | 2014

 

몽고메리에 사는 흑인여성인권운동가 로자 팍스는 1955121일 버스에서 백인들을 위해 자리를 비워놓으라는 요구를 거절하였다. 거절의 대가로 그녀는 체포되어 벌금형을 선고받아야 했다. 이 사건은 몽고메리 지역에 있는 흑인들을 자극했고, 대대적인 버스 승차 보이코트를 벌였다. 직접적으로는 로자 팍스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는 불복의 표시였지만, 실제적으로는 백인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흑인들이 이용하는 버스에서 흑인의 자리 이용 권리가 거부되는 것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거의 일 년 동안 지속된 보이코트는 미국 전역을 들썩거리게 했고, 심지어 외국 언론에서도 주요 이슈로 다뤄졌다. 그 결과 대외적인 이미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미국 대법원은 19561113일에 대중교통 이용권과 관련해서 인종차별적인 제한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런 판결을 얻어내는 데 있어서 마틴 루터 킹의 기여는 작지 않았는데, 그의 흑인인권운동에서 첫 번째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마틴 루터 킹의 흑인인권 및 시민운동은 흔히 말콤 엑스의 폭력적인 시위와 대조되었다. 말콤 엑스 때문에 그의 비폭력적인 평화 시위운동은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더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흑인의 폭력적인 시위 때문에 혹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제2의 남북전쟁을 두려워했던 미국 정부가 마틴 루터 킹의 주장을 결코 간과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게다가 마틴 루터 킹은 196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인물로 그의 움직임은 세계가 주목하고 있었던 터였다.


영화 <셀마>는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시작해서 1965년 미국 남부에 위치한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 있는 작은 도시 셀마에서 일어난 흑인참정권을 위한 마틴 루터 킹의 헌신을 다루고 있다. 당시의 상황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영화는 시위와 진압으로 압축되는, 마치 전쟁터를 연상하는 극도의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와는 달리 매우 차분한 느낌을 주도록 연출되었다. 또한 비록 마틴 루터 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세계적으로 성공한 인권 및 시민운동가라 할지라도 그를 영웅적으로만 그려내지 않았는데, 그의 우유부단한 모습과 도덕적인 흠결을 결코 숨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앨라배마 주에선 흑인이 투표권을 얻기 위해서는 미국 역사와 헌법에 대한 지식에 통달하고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투표자격을 얻는 자리에서 이와 관련된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다수의 흑인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문맹자가 많은 상황을 숙지한 백인들이 흑인의 참정권을 제한하기 위해 마련한 교묘한 전략이었다. 심지어는 교육을 받은 흑인들조차 대답할 수 없는 질문도 있었는데, 예컨대 영화에서도 나오고 있지만, 도시 내 모든 법관들의 이름을 묻기도 했다.


그동안 흑인의 인권 및 시민권을 위한 비폭력 평화적인 시위를 통해 흑인들의 삶의 조건들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흑인 참정권 제한은 마틴 루터 킹으로 하여금 근본적으로 운동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일이었다. 다시 말해서 유권자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을 선택하는 일에서 흑인이 배제될 경우, 흑인 인권과 시민권은 언제나 차 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했다. 흑인 인권을 지지하는 백인들도 또한 마틴 루터 킹의 인권 운동에 우호적이었던 케네디가 암살된 이후 같은 정치적인 노선을 걷길 기대했던 존슨 대통령마저도 흑인의 참정권 요구는 시기상조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FBI가 마틴 루터 킹을 도청과 감청을 통해 사찰하고 동료들에게 공산주의 혐의를 내세워 체포하는 등 여러 방식으로 방해공작을 전개하는 가운데, 마틴 루터 킹은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결국 그는 흑인 참정권 문제 해결을 위해 셀마로 간다.




그러나 흑인 참정권을 위한 새로운 법 개정을 촉구하며 시위에 참여했던 마틴 루터 킹은 셀마에서 시위대가 강압적으로 해산되고, 일부는 체포되어 수감되는 일을 경험해야만 했다. 늘상 겪는 일이라 해도 이번 경우는 달랐다. 흑인 지미 잭슨이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비폭력 평화 시위를 주장해왔던 마틴 루터 킹은 극도로 흥분된 시위대를 진정시키며, 미국 전역에 있는 목회자들과 심지어 전 세계인들에게 평화적인 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그의 연설에 고무되어 몽고메리로 모여든 사람들 중에는 흑인뿐만 아니라 다수의 백인들도 있었다. 첫 번째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 두 번째 시위에선 여론을 의식했는지, 아니면 다른 계략이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경찰 스스로 저지 방어선에서 물러났고, 이것을 본 마틴 루터 킹은 행진을 멈추고 돌아간다. 이것은 그의 심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장면이라고 생각하는데, 갑작스런 행진 중단의 이유를 시위대는 이해하지 못했고, 지도자 모임에서는 이와 관련해서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보다 더 큰 위험을 감지했기 때문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는 해명이 있었지만, 수긍하는 자도 있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시위대가 자진 해산한 그날 밤 한 백인 목사가 백인인종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되면서 상황은 급변하였다. 더 이상 평화시위는 안 된다는 의견과 그래도 끝까지 평화시위를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이런 와중에서 FBI의 도청과 감청으로 마틴 루터 킹에게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호텔 섹스 파티 정보가 담긴 녹취록이 공개된다. 마틴 루터 킹의 도덕적인 흠은 이미 함께 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던 치과의사 부인과의 불륜과 관련해서 노출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부인의 양해를 얻은 마틴 루터 킹은 이전보다 더 큰 규모의 세 번째 시위로 마침내 목표를 달성했는데, 존슨 대통령은 19653월 국회 연설에서 새로운 법 제정을 강력하게 호소하였고, 마침내 같은 해 8월에 법 개정에 서명하게 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투표권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 인종차별적인 질문에 대답을 요구하는 것은 법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선언하였고, 현저한 인종차별이 예상되는 지역에는 선거감시단을 파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즈음에서 참정권이 왜 그토록 중요한 문제였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이 영화는 인권 문제에서 참정권이 가지는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과거 여성인권운동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로 참정권은 주요했다. 역사적으로 인권운동은 개인의 정치적 참정권을 포함하여 자유적 방어권을 주장했던 1세대 인권운동에서 시작했다. 이후 사회적 경제적 보호권을 요구했던 2세대를 거쳐, 환경 보호 및 평화와 같이 인류의 보편적인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운동인 3세대로 이어졌다. 아메리칸 흑인의 경우는 먼저 법적 지위를 얻는 것으로부터 삶의 자유를 위한 노력이 우선되었다. 참정권의 배제는 온전한 흑인 인권 실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인권운동의 기본은 정치적 참정권과 자유권을 얻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정치적 결정권이 배제된 상태에서 소수의 지배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보호할 권리와 방법이 법적으로 주어져 있지 않을 때 차별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인 참정권은 국민이 자신을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참정권을 방해하는 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참정권을 왜곡하는 일이 있는데, 바로 선거조작이다. 관권에 의한 부정선거는 겉으로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제스처를 보이면서도 사실상 참정권을 왜곡하는 일이다. 선거부정으로 국민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구가 배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정선거는 실제적으로 보면 참정권을 배제하는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셀마>와 마틴 루터 킹의 흑인 인권 및 시민운동이 오늘 우리에게 뜨거운 기억으로 되새김질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 인권과 시민운동의 한계는 온라인에만 머물러 있는 국민 다수에게도 있지만, 결국에는 국민의 참정권을 심각하게 빼앗은 데에 있음을 명심하자.

 

최성수 │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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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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