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이웃됨을 말하자.
우리는 성경의 말씀과 여러 설교자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론에 대한 가르침을 들어왔다.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각 지체는 다양한 달란트와 사역으로 몸을 유기적인 기능을 실천하는 공동체가 교회임을 잘 알고 있다. 신체의 한 부위가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 장애를 입거나 이상이 생길 경우 몸의 다른 부분들도 함께 고통스러워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됨은 잘 이해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이웃됨'에 대해서는 잘 언급하지 않는 듯하다.
에베소서 4:25절을 보면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교회 구성원만이 지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이웃 역시 우리의 지체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로마서 12장 4-5절에도 잘 나타난다.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는데 각기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되어 각기 다른 지체를 형성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에베소서 4:15-16절에서는 이러한 지체들을 서로 연결되어 있을 때 성장할 수 있으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워나간다고 말한다. 그 외에도 몸으로서 공동체의 연합과 하나됨을 설명하는 구절은 고린도 전서 12장과 골로새서 2장에서도 나타난다.
다양한 지체들의 연합으로서의 한 공동체임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떠한 관점으로 이웃을 바라보아야 할까? 지체의 다양성을 폭넓게 인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다원주의와는 다른 이야기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서로를 인정하고 격려하는 태도,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함께 성장하고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한 삶의 자세가 요청된다. 겉모습과 삶의 방식들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배척하거나 무시하는 행동은 자신의 생명을 갈아먹는 어리석은 행동인 것이다. 성경은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두가 영광을 얻은 것이고 한 지체가 어려움에 빠지면 모두가 어려움에 빠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몸은 함께 사는 공동체이다.
디트리히 본회퍼도 <그리스도론>에서 교회를 향하여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라고 설명했다. 개인에게 인격이 있듯이 공동체도 공동체의 인격이 있으며, 공동체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이 땅에 일하고 계심을 말한 것이다. 하지만 본회퍼는 더 나아가 <타자를 위한 교회>까지 언급한다. 나를 위한 교회에서 너를 위한 교회로, 서로의 지체를 위한 곳으로 교회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공동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물음은 ‘그리스도의 몸’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에 있다. 그리스도의 몸됨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곳은 당연히 가정이다. 그리고 조금 더 확대해서는 교회 공동체, 신앙의 공동체까지 될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어야 할까? 바울은 공동체의 전제 조건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말한다. 그 방법도 사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심과 동시에 세상의 구원자시다. 세상의 왕이시다. 또한 세상의 머리이시다. 세상 전체가 그 분 안에 있다.
그렇다고 세상이 곧 교회는 아니다. 하지만 한 지체됨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게 될 때 우리는 세상의 아픔을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나의 아픔으로 고백할 수 있으며, 세상의 진정한 즐거움과 행복음을 함께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세상의 죄악을 나의 것을 고백하며 대신 회개하고, 세상의 추함을 정화하고자 스스로 각성하며 노력하는 삶의 자세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됨이 교회안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교회 밖,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의 영역이 미치는 모든 삶의 자리까지 확장되어질 때, 몸의 생명력은 더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향한 온전한 성장과 성숙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다른 부위라고 찍어내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연약하지만 우리 신체의 연약한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건강한 공동체로 세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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