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강영롱] 페이스북에 떠도는 솔깃한 이야기



반응형



페이스북에 떠도는 솔깃한 이야기

 

강영롱(객원연구원)

 

1.

솔깃한 이야기는 대개 사적인 자리에서 듣게 된다.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익명의 다수에게 전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 동료가 내게 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에 마음이 더 쏠린다. 이야기의 진위여부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평소 이성적인 사고를 하던 사람들도 직접 들은 소문에 대해서는 별로 의심하려고 들지 않는다. 매체에 보도되기도 전에 들은 새로운 이야기인데다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서 흘러들어온 정보이기 때문에 그렇다. 게다가 이제부터는 내가 직접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다. 내가 솔깃하게 들었기 때문에, 다른 사적인 자리에서 내 입을 통해 이 이야기를 들을 그 사람도 분명 귀가 솔깃할 것이다.

루머사회를 쓴 니콜라스 디폰조는 자판기 효과라는 말을 썼다. 사람들이 일하는 곳에는 어디든 자판기가 있는데, 직원들은 자판기 앞에 서서 비공식적인 대화를 즐긴다고 한다. 자판기 효과는 여기서 일어난다. 이런 대화엔 꼭 객관성과 사실성을 담보하지 않아도 된다. ‘~카더라로 끝나는 소문이나 추측성 정보들을 주고받아도 무방하다. 특정한 사건에 대해서는 개인의 감정적인 품평을 곁들일 수 있다. 소문은 이렇게 개인적인 자리에서 시작되어 비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퍼져 나간다.

그래도 자판기 시대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소문을 나눴다. 그래서 말하는 사람에 따라, 이 소문에 무엇을 더하기도 했지만, 덜하기도 했다. 듣는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언어를 선택하고 내용의 수위를 조절했다. 적당한 자기 검열이 이루어진 셈이다. 말하는 사람은 종종 뜸을 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전달 속도도 더디었다. 커피 전문점이나 휴게실, 이발소와 같이 입에서 입으로 소문을 전하던 자판기 시대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SNS라는 자판기 아래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사람과 사람이 비공식적인 망으로 얽혀 들었다. 소문의 양도 늘었을 뿐 아니라 전파속도와 파급력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고 커졌다.

 

2.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믿을 만한 친구가 글 하나를 공유했다. 세계적으로 확산된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사기라는 것이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사람들에게 루게릭 병을 알리고 루게릭 환자를 돕기 위한 연구 자금 모금을 위해서, 미국 루게릭병(ALS) 재단에서 시작된 모금 운동이다. 그런데 이렇게 모은 기부금 중 27% 미만이 본래 목적대로 쓰이고 나머지는 재단 중역의 급여 등, 다른 목적에 쓰이고 있다는 고발성 기사였다. 처음에는 적지 않게 놀랐으나 믿을 만한 친구가 공유한 글인데다가, 지금껏 언론을 통해 비영리단체들의 불투명한 재정 운영과 비리를 다룬 기사를 여러 차례 접했던 터라, 나도 나를 믿을 만한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이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물론 소문에는 사적인 의견도 더해졌다. 기부 문화의 허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었고, 기부 재단의 허술한 방만한 재정운영과 실태에 대한 품평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개운치 않았다고,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을 이야기한 사람도 있었다. 아이스버킷을 주도한 재단을 비난하는 글도 적지 않았다. 믿을 만한 사람이 전한 정보에 좋아요를 누르며 동조하는 의사를 표했더니, 또 다른 사람도 역시 비슷한 의견을 더했다. ‘좋아요를 누르지 않을 바에야 시비 걸지 않는 게 페이스북의 미덕이어서 그런 지, 다른 의견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이 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사람들은 소문을 그대로 믿었다.

그러고 나서 한참 후에 ALS 재단의 반박기사를 봤다. 반박기사의 요점은 다음과 같았다. ALS 재단은, 79%의 기금을 목적에 맞게 사용하고 있으며, 여러 NGO 감사기관으로부터 신뢰할만한 재무재표를 보여주고 있단 평가를 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주요 임원들에게 지급하는 급여도 다른 기부단체들과 비교했을 때 합리적인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니 이 반박기사에 대한 지지자들도 상당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폄하했던 기관이 ALS재단의 발표 자료를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게다가 기사를 제공한 기관도 신뢰할 만한 기관인지 의심스럽다는 의견까지 있었다. 문제는 페이스북에서 이런 반박기사와 합리적인 의견들이 별로 확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소문의 진상을 알아챈 사람도 침묵하기 십상이다. 페이스북의 생리상 자신의 의견을 철회하는 데에도 좋아요라는 사람들의 지지가 필요한 법인데, 이미 한번 지나간 사안이 다시 자판기 곁에 있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보장이 없다. 자기 생각을 뒤집고 이미 많은 사람이 공감한 일에 다시 끼어들어 초를 치는 것 같아 더 용기가 나지 않는다.

 

3.

최근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을 타고 빠르게 퍼진 이야기 하나 더 있다. 바로 애국가 낮춰 부르기. 지난 8, 서울시 교육감이 애국가 낮춰 부르기시행령을 발표했다. 본래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는 가장조로 가장 높은 음이 미까지 간다. 근데 서울시에서 이 곡을 학교에서 바장조로 낮춰 부를 수 있게 했다. 아직 성대가 발달하지 않은 학생이나 변성기에 이른 학생들을 배려하기 위한 조치였다. 근데 어떤 사람들은 이 조치 안에 정치적인 음모가 깔려 있다고 알려왔다. 원곡에서 느껴지는 기백과 장엄함은 다른 어느 국가와도 비교할 수 없는데, 3도를 낮춤으로써 단조의 기운이 느껴지는 우울하고 맥빠진 곡이 되어버렸는데, 이 안에 과거 운동권의 전략이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 교육감으로 당선된 진보 인사를 앞세워, 애국가를 운동권 노래보다 하위에 두려운 무서운 전략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애국가 낮춰 부르기에 대한 논란은 과거 문용린 전 교육감 시절에 추진된 것으로 밝혀져 해프닝으로 끝났다.

소문에는 아직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렇게 유통되는 소문의 상당수가 자신과 다른 입장을 폄하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대개 이런 소문은 대개 사실 자체라기보다는 그 사실에 대한 해석된 의견일 때가 많다. 그것도 정치색을 띤 의견이다. 한국 사회 안에서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유별난 데가 있다. 다른 한편을 증오의 대상으로 정한 다음, 그편과는 절대로 타협하려 하지 않는다. 상대를 불신하고 의심한다. 이건 일종의 정치적 편집증이다. ‘애국가 낮춰 부르기에 대한 소문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 아무런 연관을 찾을 수 없는 일들에서 교묘한 인과관계를 찾는다. 모든 사건의 배후에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는 혐의는 두는 것은 이념 과잉 사회가 나은 편집증적 행태다.

 

4.

언제부턴가 비공식적인 경로로 유통되는 정보가 공식적인 채널을 통한 정보에 비견할 만한 영향력을 지니게 된 것 같다. 신문에 실린 것과 똑같은 기사라도 지인의 링크한 기사가 더 잘 읽히는 법이다. 그 기사는 알고 지내던 사람의 관심사와 취향, 정치적인 견해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페이스북에 언론이 작성한 기사들만 돌아다니는 게 아니다. 이곳에는 검열과 심의과정을 통과할 수 없는 소문들도 무성하다. 이곳은 이미 개인의 사생활과 취향을 공유할 뿐 아니라, 정치적인 견해까지 피력하고 자발적인 캠페인을 일어나는 새로운 자판기가 되었다. 이곳은 이제 주류 언론이 손대지 못하는 민감한 사안들을 다룰 수 있고, 사람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떠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비공식적 광장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에서 다루는 정보들에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믿을 만한 지인이 실어 나른 정보라도 자판기 담화의 원리에 따라 무비판적인 수용을 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자판기 효과에 노리는 정보가 상당하다는 것을, 다시 말해 사실관계나 진위여부가 확인 되지 않았지만 비공식적인 연결망을 타고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이 있는 정보들이 많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게 필요하다. 특별히 한 개인이나 기관을 깎아내리는 소문이나, 정치색을 띠었더라도 분노와 증오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내용인 경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개인의 추측이나 해석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겠다.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 정보의 진위여부가 확인되기 전까지 평가를 유보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우리는 재미삼아 올린 정보가 다른 사람이나 기관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페이스북의 특성상, 우리는 이미 정보의 최초 생산자는 아니어도, 정보의 확대 재생산에 기여하는 사람이다.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한, 우리가 잘못된 정보를 확산하는 데 기여할 소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반응형
카카오스토리 구독하기

게 시 글 공 유 하 기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밴드

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미지 맵

    웹진/테크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