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 평화 시네토크
일시 : 2014.05.24.(토) 09:00 영화 <댄싱 인 자파> 상영 후
장소 : 작은영화관 필름포럼 1관
주최 : 한반도 평화연구원
주관 : 서울국제사랑영화제
패널 : 김회권(숭실대학교 교수), 전영기(중앙일보 논설위원), 임세은(서울국제사랑영화제 프로그래머)
사회 : 임성빈(KPI 부원장, 서울국제사랑영화제 조직위원장)
임세은 프로그래머(이하 임)
이번 영화제의 주제는 “차별과 관용”입니다. 세상의 진실한 사랑을 찾아낸다는 의미에서 갈등으로서 차별의 문제를 심화시킨 영화들을 선별했습니다. <신이 보낸 사람>이라는 영화 이후, 남과 북의 경계를 넘어서 국가, 종교, 문화, 민족적 경계에서 차별지대를 다룬 영화들을 중심으로 선별해서 “경계와 비경계”를 다루고자 했습니다. 이 영화들은 단순히 갈등을 다루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화해와 평화를 시도하고 질문하며 이루어나가는 과정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영화 <댄싱 인 자파>는 그러한 가치를 가장 잘 다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댄싱 인 자파>의 감독 ‘힐라 메달리아’는 유대인입니다. 인권이나 장애, 세계 평화, 치유 등을 중심으로 다큐멘터리 전문 감독입니다. 대표작으로는 39 파운드 오브 러브(2005), 예루살렘에서 죽기(2007), 카트리나 그 후(2009) 등이 있으며 2013년 31회 뮌헨 국제영화제 미래상 등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영화 소개
유명한 사교댄스 댄서인 피에르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유대인 두 커뮤니티가 정치적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데 춤이 매개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두 커뮤니티의 아이들이 댄스교실에 참여하도록 하여, 이들이 함께 춤추는 댄스 교실을 연다. 그리고 피에르가 만든 댄스교실에서는 마법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네이버 영화]
전영기 중앙일보 논설위원(이하 전)
저는 세 가지가 인상 깊었습니다. 먼저 영화를 보면서 “일을 해내는 것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생에서 달인의 경지에 올랐을 때 찾아오는 허무함이 있게 마련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유명한 사교댄스 댄서인 피에르는 그러한 순간에 꿈을 찾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둘째로, 적대적인 사회에서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주장이나 옳음, 이익, 물질이 아니라 춤, 곧 문화가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몸이 부딪히면서 나타나는 관계의 형성, 그리고 변화를 일으키는 수단으로서 문화를 봤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외부적 갈등을 다루면서 동시에 이스라엘 내부적으로 겪고 있는 남녀 간의 갈등을 다루었습니다. 영화가 전문배우를 출연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에 기저한 갈등과 충돌을 부풀리거나 과잉 없이 자연스럽게 드러낸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그것을 바꾸려는 사람과 그 사람의 꿈이 있어야 합니다. 이때 변혁의 도구를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변화를 위해 사람의 보편적 아픔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함을 영화가 이야기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회자 임성빈 교수(이하 사회자)
세바시로 유명해진 김창옥 교수의 말을 정리해보면 자신이 세월호 사건을 경험하면서 처음으로 개인의 신앙적 차원에서 ‘공공의 영성’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피에르에 초점을 맞춰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전 위원님도 아마 은퇴를 앞두고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웃음) 김회권 교수님 욥바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죠.
김회권 교수(이하 김)
욥바는 텔 아비브에서 30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욥바는 니느웨로 가는 길, 다시스로 가는 길목의 국제항구였는데 성경은 제노포비아, 외국인 혐오증과 적대감을 뛰어넘는 상징으로서 욥바를 말하고 있습니다.(욘 1:3, 행 9:43, 36) 그래서 욥바가 아마 선택된 게 아닌가 합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1948년에 영국군이 철수하면서 당시 영국군의 자치령이었던 이스라엘이 독립공화국이 되어 버립니다. 그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아랍계열 사람들, 곧 셈 사람들이 요르단으로 많이 도망을 갔습니다. 미국으로 가기도 하고, 레바논으로 가기도 하면서 지금은 약 13%만 남아있다. 1948년에 동유럽 유대인들이 집단적으로 본토로 돌아가자는 알리아 운동을 할 때도 인구가 10% 이상 넘지 않았습니다. 사실 1917년 영국 외무부 장관이었던 아서 벨푸어(Balfour)가 영국의 자치 위임령으로 일정 신탁 통치를 받다가 이스라엘 인구가 majority가 되는 순간 국가를 세워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majority가 돼서 자유선거를 치르더라도 Free Democraty Jewish Majority Statement를 세워주겠다고 약속을 했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해도 인구가 늘지 않는 겁니다. 인구가 늘지 않은 채 독립을 선언하니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56, 66, 73년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이 3전 3승하면서 땅을 완전히 점령을 했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웨스트뱅스(요르단 강 서안 지구, West Bank) 사마리아 가자 지방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지방이었고 주로 통속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주인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때부터 정착민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병합이 되 버린 겁니다. 그 상처가 가장 많은 곳이 가자와 가자로 가는 방문에 있는 욥바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위로부터 일어나는 국가 간의 평화협상 보다는 아래로부터 오는 기능주의적, 귀납적 민심, low key로부터 오는 평화적 역량을 축적해야 합니다. 우리 남한과 북한의 경우 정부 주도의 일괄 협상, 6자 회담과 같은 일괄 협상은 영구적으로 통일 아젠더를 미제로 남겨둘 수밖에 없습니다. 예상외의 방법, 춤, 장기, 바둑이라든지, 전혀 비정치적 색깔을 가지면서 남녀가 살 수 있는 방향을 만드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자꾸 축적이 되면 함께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미국이 바라보는 것은 이겁니다. 이스라엘 국가가 두 나라로 가야 한다. Two-States Solution으로 가야하는데 문제는 이스라엘의 네타냐후가 리쿠르(Likud) 당 당수인데 그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을 에레츠 이스라엘 (Eretz Israel), 다윗 시대에 약속한 땅, 정복한 땅 전체를 영구 귀속시키려고 합니다.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영구적 자치령으로 존재해야 하고 이스라엘은 온전히 Sovereign Statement가 되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옛날에 Charles W. Colson이 쓴 『The Body』(이것이 교회다, 홍성사)라는 책에서 보면 리쿠르 당을 극복 하려고 애를 쓰는 대목이 나와 있죠. 미국 오바마나 EU 선진국의 대부분이 Two-States Solution을 제기합니다. 두 나라가 기독교, 무슬람, 이스라엘이 공존하는 자유민주주의, 서구 민주주의적 다원주의 가치가 공존하는 덜 종교적인 '두 나라 solution'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가 싶고요. 영화가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사회자: 우리 어렸을 때 생각하면 남녀가 손을 안 댔잖아요. 그런 면에서 영화 속 아이들이 손을 안 잡는 게 종교적, 문화적 이유에서든 엄청난 터부인데 피에르는 챔피언이랍시고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아마 시행착오가 있었겠죠. 그런데 와이즈만 학교의 경우 이미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의 통합적 교육을 하고 있으니까 진도가 빨랐던 것처럼 학교마다 다르게 흡수되는 것이 보였습니다. 문화가 정착되는데 제도와 시스템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같이 하게 되었는데요. 전문가들이 많이 와 계신데 플로어에서 다양하게 느끼신 포인트와 간략한 질문 나눠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floor #1 배혜화 교수
저 역시 춤에 대해 문화적인 편견이 있었는데 그게 깨지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교육자로서도 마음을 다시 다지게 되고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 초에 가자에 다녀왔는데 직접 보니까 폭력적이고 불친절한 분위기를 느꼈는데 영화를 통해 상대적인 문화가 존재하는구나, 느꼈습니다.
floor #2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야기만 했는데, 인도 사람만 해도 한국 상황이 아무 것도 아니랍니다. 우리가 너무 우리만 생각하지 않았나, 합니다. 한일 관계도 어떻게 보면 문화적으로 가까워도 정치적으로는 해결된 게 하나도 없어요. 피에르 같은 사람이 많이 나와야하겠는데, 댄스가 아니더라도 어떤 것들이 타협하게 하고 치유하게 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했습니다.
사회자: 의심의 해석학이 발동하는데 과연 춤으로 갈등의 해소와 평화가 가능할까요.
전: 사람의 마음속에 적대와 분노가 쌓여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대상이 대체 왜 저럴까, 내가 모르는 어떤 게 있는 것은 아닐까, 손이라도 잡아볼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진돗개를 무서워하는데요. 겁내면서도 동시에 쓰다듬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영화에서 어떤 드라마틱한 장면이 나오지 않았지만 양쪽의 문화적, 정치적 차이와 갈등이 있더라도 10주간 대화 과정을 통해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을 건드려 주는 것, 영화에서는 그들이 동시에 좋아하는 것, 곧 댄스를 통해 가능하게 했던 거죠.
한일 관계도 사실 그렇습니다. 민족주의적인 감정에서 일본과 영토 문제로 부딪힐 때조차 내가 일본 사람 하나하나를 미워할 필요가 없는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일본 사람들도 그럴 것이라고 봅니다. 일본의 여든이 된 노인이 일부러 찾아왔어요. 예전에는 좋든 싫든 박태준 씨나 김종필 씨나 국가적 갈등세력을 막부에서 풀었던 세대가 있었는데 1990년대 이후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기나긴 역사 속에서 강력한 시민적, 문화적 가치의 공유가 많은데도 그것을 잊고 있다.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나눌 새로운 세대가 필요하니 소개해달라고 왔어요. 특히 정치인사들 대신에 문화인사들, 시민인사들 가운데 새로운 세대를 만들어내야 한다더라고요. 그러면서 미국, 중국, 일본과 시민 연대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교류, 시민적 교류를 인위적, 인공적으로 가지고 언어도 배워야 한다는 거죠. 정치란 내부적 지지를 얻고 집권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관리의 수준이 필요한데 지금은 관리의 수준을 넘어선 거지요. 그러므로 친미, 친중, 친일, 심지어 친북을 동시에 해나가면서 돌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서울국제사랑영화제가 아닙니까. 사랑 속에서 구조적 해결이 아니라 마음의 해결부터 우선 해놓고 보는 거지요.
김: 집단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서 적대만 하지 않으면 우리도 분업이 될 수 있습니다. 불가피하다고 보고 현실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역사를 생각하면서 역사의식을 신격화시키면 국가주의와 같이 가게 됩니다, 국가가 구원을 대신하는 그리스로마의 국가종교 State Religion이 된다. 하나님의 구원을 국가가 대신하는 국가 중보신학이 나오거든요. 그리스로마, 특히 로마가 국가종교행사에 참여할 때 구원과 말했거든요. 우리나라의 한기총 등 보수 기독교세력은 정부를 도발할 경우 국가의 틀을 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반응합니다. 시민사회가 국가를 통제해서 결국 국가의 폭력성을 일정 수준 수위를 낮출 수 있으려면 시민혁명이 국가혁명보다 7:3으로 앞서야 하거든요. 그러려면 시민들이 깨어있어야 하고 교회, 언론, NGO 단체가 그걸 깨줘야 하는데 지금은 국가 섹터가 시민 섹터를 압도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서울국제사랑영화제가 국가에게 교육을 위임하지 않고 문화적으로 확산하는데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역사의식의 신격화가 굉장히 위험하다고 항상 느끼고 있고 동북공정이나 조선 숙종 때 안정복이 가서 울릉도, 독도를 정복하고. 결국 역사를 공부할수록 일본에 대한 적대감에 불을 붙이는 거거든요.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현재 국가적 약탈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역사에 호소하는 겁니다. 그러면 무지한 대중 대부분이 역사의식에 빠지거든요. 1274년에 가미카제(神風·신의 바람)라는 일본의 집단적인 구원 경험이 있습니다. 기타규슈(北九州, 북부 규슈)에 여몽연합군이 가서 일본을 정복하려고 200여 척의 배를 가지고 습격했는데 기적적인 바람이, 출애굽의 바람과 똑같은 바람이 밤새도록 불어서 배가 8-90%가 파괴되었습니다. 그걸 우리는 가미카제 신풍이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그 전에 고려와 몽고가 일본 기타규슈 해변 사람들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무쿠리고쿠리’라고 가장 나쁜 말로 사용됩니다. 아직도 일본 남해안 사람들이 고려와 몽골 사람들을 얼마나 치를 떠는지 모릅니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일본보다 적어도 심리적으로는 우위에 있어야 가능한데 우리는 항상 일본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못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몽고에 대해 적개감이 없잖아요. 몽고가 엉망이 됐기 때문에. 일본이 정말 후쿠시마 같은 게 서너 개 같은 게 더 생겨서 일본 영토가 8만 평방 km밖에 남지 않고 다 없어진다, 그러면 훨씬 쉬울 텐데 이 콤플렉스 때문에 한국은 일본을 미워하는 겁니다. 바뀌기를 원하지만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저는 역사의식의 신격화가 국가 주도적이 될 때 매우 위험하다고 보고요. 역사의식을 신격화하지 않는 시민들의 국제적 연대의식, 미의 의식이 훨씬 더 역사의식보다 강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서울국제사랑영화제의 위상을 높여야 합니다.
사회자: 우리가 국가주의, 국가가 신격화되는 것에 대한 문제, 민족이 신격화되는 것에 대한 문제, 모든 것이 절대화됐을 때의 폐해들에 대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서도 여러 입장 간에 갈등이 있습니다. 갈등의 시대에 공통의 언어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영화에서는 춤이 공통의 언어였는데, 이 시대 공통적인 출발점은 무엇으로 해야할까요? 영화 속에서 부모들이 첫 질문이 “무슨 도움이 있어요?” “애들이 뭐가 늘었어요?” 그리고 맨 마지막에 “와이즈만이 1등 할 거야” 하더라고요. 이러한 우리의 이기심, 자기중심성에도 불구하고 자기 존중과 상호 신뢰의 돌파구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이것이 우리 시대 한평원이 고민하고 있는 이슈입니다. 애통함 가운데 건설적인 대안, 공통의 화합의 방안을 같이 이야기해주시면 패널들이 한 번에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floor #3
서강대학교 법학 전공 대학원생입니다. 제가 북한에서 7년 전에 왔는데 북한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을 알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스라엘을 침략자라고 비판하는 한편 팔레스타인의 야세르 같은 지도자들이 북한을 방문 했었거든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갈등의 원인에 대해 공부하면서 다른 부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가지 정도로 느낌을 나누고 싶은데요. 테러를 비롯한 국제 갈등이나 분쟁이 종교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우선 기독교인으로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국내에서도 타종교간의 갈등 문제가 있으니까요.
또 영화를 보면서 피에르가 곧 여학생 누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출신으로서 피에르가 양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중개자의 역할을 하는데 피에르의 도플갱어로서 누르를 봤습니다. 누르가 자라서 피에르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탈북자, 곧 새터민들이 남한과 북한의 중개자로서 통일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 북한에서 배신자라고 불리는 새터민들이 그들에게 통일 이후에 호응이나 감동을 줄 수 있겠는가. 또 남한에서 이방인으로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못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에서 비판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의 사례를 들어서 가능하다고 봅니다. 우리의 숙제이기도 하지요. 정리하면, 새터민과 누르의 모습이 오버랩이 되면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남북 갈등 해결을 위해 현실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기독교인으로서 성찰하고 새터민으로서 피에르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새터민을 키워내는 현실적 작업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고민해봤습니다.
floor #4 한국누가회 임성재 목사
저는 제일 처음에 피에르가 이스라엘에 들어와서 “저기가 내가 살던 집이다.” 이 대사가 가장 크게 와 닿았습니다. 자기 사역에 한계를 느끼고 여자 댄서를 나중에 불러올 때도 제일 먼저 데리고 가는 데가 자기가 살던 집이에요. 거기 가면서 조그마한 방에 8-9명이 산다고 하거든요. 결국 갈등의 가장 큰 원점은 생존입니다. 문화적 배분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작은 불꽃은 일어나야 하지만 근본 해결은 아니라는 겁니다. 무엇보다도 생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floor #5
춤으로 해결될 수 있는가? 구조적인 문제, 생존의 문제가 있지 않는가? 이러한 질문과 관련해서 양자택일적인 것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해결된다고 봅니다. 정치가 구조를 변혁하고자 할 때, 정치인들이 협상할 때 민심이 큰 영향을 미칩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스라엘 수상이 살해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증오가 가득한 상태에서는 정의로우면서 평화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지나친 적대감과 증오를 풀어가는 작은 노력이 평화를 향한 실제적인 토대일 수 있다고 봅니다. 영화의 배경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모색하면서 “좋은 사람이란 나쁜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사실 똑같은 인간이다.”라는 것을 가르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기 삶의 자리에서 자신들을 몰아내고 이방인으로 만든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것이 당연할 수 있는데 그런 미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있습니다. 사실 팔레스타인이나 유대인도 인간이라는 공통점을 댄싱이라는, 결국 모든 인간이 사실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말이 필요 없이 몸으로 할 수 있는 공통적인 만남에 춤이 한 수단이었습니다. 단순한 춤이 아니라 상대를 한 인간으로 존중한다는 부분의 가르침이 같이 있었기 때문에 평화를 위한 노력으로서 중요하다고 봅니다. 나중에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정치가들의 꿈을 나중에 이루기 위한 밑바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floor #6
서울여대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1월에 이스라엘 다녀와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관심이 생겼는데요.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영화에서 춤보다 교육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당장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정치적 문제가 개입이 되어 있지만 미래적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아이들을 평화에 대해 교육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floor #7
몇 년 전에 학교에서 일본 학생들과 교류했던 적이 있어요. 처음에 반감이 있었지만 나중에 음악을 통해 하나 되고 변화되더라고요. 작년에는 음악으로 새터민 친구들을 만났는데 이 모든 게 지속성이 중요하다고 느꼈고요. 자본주의 체제 밑에서 남한 주도의 것이 아니라 남북한이 같이 해나가는 방안을 묻고 싶고요. 영화에서 피에르는 아이들이니까 이 일이 가능하다고 보았는데, 기성세대가 여전히 존재하는 남북에는 통일이 되었을 때 어떻게 접근 가능할지요?
사회자: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이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한국 내에서 반 이스라엘 정서가 그 어떤 나라보다 높다고 해요. 인권의 관점에서 시민사회는 이스라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은 친근하게, 팔레스타인은 가나안과 동일화시켜서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편견이 지속되거나 혹은 달라지고 있기도 합니다만, 대개 기존 교계와 시민사회가 갈등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서 혼돈 정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건 김회권 교수님이 정리해주실 테고요. 다른 질문, 구조의 문제냐 문화적 차원에서의 문제냐 하는 것들. 문제해결의 접근, 방법론의 효율성에 대해 전 선생님께서, 영화에 대해 임 프로그래머가 정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반도평화연구원 전우택 원장님이 정리하시고 마치겠습니다.
김: 출판사 ‘생명의 말씀사’에서 초창기 세대주의 교과서를 많이 유포시켰습니다. 미국 달라스 신학교를 비롯해서 보스톤에 있는 시오니스트 등 이스라엘 본토에서 시온 왕국이 재건될 것이라는 친이스라엘적인 신학이죠. 지금 기독교인들은 친이스라엘적 경향이 전부는 아니라도 적어도 고분고분하게 교회를 다닌 사람들은 친이스라엘적인 성향을 가지면서 블레셋 족속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동일시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여호수아 주석은 가나안 정복민들의 입장을 팔레스타인으로 보는 입장까지 나왔습니다. 일반적인 이스라엘 민족의 위치가 뭐냐. Two-Track People이라고 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 백성의 신분이 아직까지 포기되지 않았고 로마서 11:25-27에서 시온의 죄를 씻어주시고 구원해주신다는 약속을 믿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테러를 일으키는 깡패와 같은 존재에서 요한계시록 7:1-9에 나오는 모든 민족을 포괄하는 이스라엘로서의 조건이 종말의 때에 맞는 거거든요. 스코틀랜드의 앤드류 월스가 쓴 논문이나 책을 보면 “천국은 multi-ethnic, national society”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땅 약속만 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신 목적을 성취시키는. 그러니까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의와 공도를 실천해 나가고 나그네를 대접하는 나라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지금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에 물을 그냥 주잖아요. 그런데 가자, 웨스트뱅크는 에너지를 스스로 해결할 수가 없어요. 국가가 되기 위해서 말레이시아 같은 좋은 나라가 에너지를 주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그런데 팔레스타인이 너무 적대적으로 나가는 바람에 이스라엘도 극복하기 어려운 분노가 있고요. 제가 볼 때 쌍방 누구를 비난할 수 없고 불쌍한 사람들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 영화를 통해 차이와 차별, 갈등을 한일관계, 남북관계, 나아가 국내 상황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데 국가는 적이 아니라 관리 대상입니다. 국가를 잘 이끌어가야 하지만, 국가와 시민사회를 대결구도로 보는 것은 지금 합당한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30년 전에는 그러했습니다만, 이제 국가란 국민이 시민이 관리해서 잘 끌어가지 않으면 국가와 시민 전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험하고 깨지기 쉬운, 유리 그릇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국가의 폭력적인 느낌이 있어요. 상황을 악화시키는 호랑이 같은 존재로만 국가를 인식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존의 문제를 사실 국가의 정책으로만 해결되는 것에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사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경우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리력으로 바꿀 수밖에 없는데 생존을 대할 때 실패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천상 마음을 중심으로 껴안는 것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많은 체제와 구조가 깨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영화에서 사람들이 춤을 출 수 있는 것은 믿음 때문이라고 했고, 우리의 논의에서 춤은 존중이라고 했는데 우리의 갈등의 70%는 태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적대를 위한 적대, 분노를 위한 분노, 혁명을 위한 혁명이지요. 우리의 태도를 변화시키기는 어렵지만 예의를 갖추는 것을 중시해야 합니다. 이 일이 국가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라는 동일시, 하나님과 예수님의 마음을 닮는 것과 귀결된다고 봅니다. 내 마음을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결국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임: 하나님의 선함을 인지하면서 악인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결국 태도와 자세의 문제입니다. 성경에서 “너희의 관용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라”는 말씀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제가 추구하는 것이 그러한 태도를 알게 하는 교육입니다.
사회자: 저는 변혁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영화를 보면서 애통과 분노의 순간에 어떻게 희망을 가지고, 변혁을 꿈꿀까, 피에르를 보면서 변혁이란 소유권은 포기하면서자기 정체성(자기 살던 집)이 분명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했습니다. 피에르가 챔피언이었던 것처럼 자신의 강점이 있어야겠습니다. 교장선생님, 피에르 모두 자신의 탁월함으로 어린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와 어느 정도 밀어붙이는 것도 필요하고요. 엄마들은 목적이 1등이었지만 피에르 선생의 목적은 춤을 추면서 자세와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통한 자존감 회복이었습니다. 생명 중심의 자존감 회복을 통해 신뢰를 이루는 것이 우리가 꿈꿔야 하는 것이 아닌가. 포괄적으로 구조의 문제, 헌신, 문화적 접근 등 자신이 가진 것으로 해야 하지 않겠나 합니다. 더 참고하실 분은 한평원에서 나온 『사회주의 체제전환과 기독교』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중 문화 통합에 대한 섹션을 참고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를 초청해주시고 큰 계획 속에서 이 일이 이루고 계시는 전우택 원장님께서 한 말씀 해주시겠습니다.
전우택 원장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처음 뵙게 된 분들 연락처 남겨주시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이 끊임없이 폭탄테러와 죽음이 있는 곳이고 물리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이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저 사람들은 그런 일을 당해도 싸다는 생각, 소위 문화적 폭력이라고 부르는데 그게 사실 가장 어렵고 힘든 과제입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춤으로 처음 손을 잡고 말하고 이 사람들도 체온이 있는 인간이라고 느끼게 한 경험이, 아마 30년 후 저 아이들 중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책 결정 중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거든요. 이때의 경험이 그때의 결정을 바꿀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당장 폭탄 터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춤은 분명히 힘이 있고 교육이 힘이 있다는 것을 영화를 보며 느꼈습니다.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은 춤을 가르치고 각자 자신이 가진 특별한 영역의 것을 어떻게 통일에 집어넣을까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북아일랜드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이어서 다음 시네토크에서는 남아공을 연구하면서 좀 더 이 땅 위에 평화와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는 데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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