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아버지다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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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다움에 대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고레에다 히로카즈, 드라마, 전체, 2013)

 

최성수 박사


남자가 여자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면 그는 아빠 혹은 아버지로 불린다. 미혼 상태라 해도 자신의 아이를 갖게 되면 아버지가 된다. 입양을 해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자녀를 갖는 것이다. 한번 아버지가 되면 살아있을 때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아버지이다. 비록 할아버지가 돼도 자식이 살아 있는 동안 아버지 호칭은 사라지지 않는다. <똥파리>(2008)에서처럼 아이들에게 나쁜 아버지로 인식되어 아버지로 대접받지 못한다 해도 아버지를 부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버지로서 역할을 못한다 해도 아버지는 아버지다. 설령 아이를 유기하든가 호적에서 지운다 해도 생부로서의 의미는 여전히 갖는다. 다만 아버지로 불리지 못할 뿐이다. 자식이 죽었다 해도 마음으로는 여전히 아버지로 남는다. 현재 자식이 있든가 과거에라도 있었다면 혹 태중에 있다 해도 아버지이다. 아버지는 자녀와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존재다. 그러니 아버지가 되는 방법은 아이를 갖는 일이다. 아버지가 되는 것은 자녀가 태어나면서부터는 숙명적이다.

 

그런데 이처럼 단순한 구조에서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아버지가 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단순함을 넘어 다른 것을 말하고 싶은 감독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겨냥하지 않는다. 그저 도시에서 살면서 한 아이를 둔 성공한 직장인으로서 평범한 한 아버지에 초점을 맞추며 이야기한다. 아마도 현대 사회 모든 아버지를 스크린으로 소환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 생각한다. 제목에서 말하는 아버지는 단지 아이가 태어남으로써 자동적으로 되는 아버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비록 아버지는 자녀와의 관계에서 결정되는 것이긴 해도 무엇보다 아버지다움에 초점을 맞춘다.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가족을 다루는 방식에서 특징은 전혀 감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죽은 아들의 기일을 맞아 모인 가족과 엄마의 충격적인 비밀을 다룬 <걸어도 걸어도>(2008)에서나 유기된 아이들의 비참한 삶을 그려낸 <아무도 모른다>(2004)에서도 그렇다. 새로 개통되는 신칸센 노선과 관련해서 만들어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역시 가정의 해체를 경험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이지만, 관객의 격한 감정을 이끌어내려는 의도를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6년간 아무 문제없이 행복하게 살았던 가정에서 아이가 바뀌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은 감정적으로 매우 격해질 수 있는 상황이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감독은 6년간 기른 아들과 친아들 사이를 오가면서 조금씩 변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낸다. 감독이 현실에서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낳은 정과 기른 정의 갈등이나 친아들과 기른 아들을 놓고 엄마로서 겪는 고통이 아니라 아버지로 변해가는 것을 화두로 삼은 것은 매우 신선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감독이 말하는 아버지다움은 어떤 것인가, 곧 아버지는 어떻게 아버지가 되는 것인가? 영화에는 두 명의 아버지가 등장하는데, 캐릭터가 매우 대조적이다. 먼저 각각의 캐릭터에 대해 살펴보자. 료타는 다분히 전통적인 아버지 상을 대변한다. 자녀가 한 인격체로서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자처한다. 가족의 명예를 세우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이를 위해 직장에서 끊임없이 성공적인 삶을 추구한다. 특히 프로이트는 아버지가 한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슈퍼에고로 정착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자녀에게 지시하고 명령하면서 삶의 원리와 원칙을 제공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인 관계를 넘어 삶의 기반을 제공하는 존재가 아버지다. 료타는 이것을 위해 아버지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아버지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이에 비해 전기상을 운영하는 유다이는 비록 가족의 생계를 온전히 책임지지는 못해도 아이들과 시간을 내어 놀아주는 것을 아버지의 역할로 생각한다.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것을 시간을 내어 행하는 것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두 사람은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대조적인 캐릭터다. 료타의 변화에 주목했던 감독은 특히 현대 사회에서 변화되는 아버지의 의미를 조명하고자 했다. 료타가 아들과 함께 놀아주는 모습으로 끝을 맺고 있는데, 감독이 유다이 쪽에 손을 들어주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쪽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 같지는 않다. 사실 그럴 수도 없지만, 사람마다 개성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감독의 결론은 아버지다움은 아이의 시각에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살든, 얼마나 능력이 있든, 얼마나 성공했든, 얼마나 많은 선물을 주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아이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아버지다움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독특한 가족 문화 때문에 이해에 있어서 문화적인 차이를 느끼지만, 무엇보다 유교적인 전통이 강한 동양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이라서 그런지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다. 특히 여성의 가치가 새롭게 인식되고 또 확산되는 중에 상대적으로 아버지에 대한 아쉬움이 커진 사회에서 아버지다움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매우 의미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 감상과 묵상은 필자로 하여금 아버지로서 뿐만 아니라 특히 목사로서 나는 어떻게 목사가 되는지에 대해 깊이 돌아보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목사가 되었다고 하면서 목사로서 성공하고 목사로서 양을 돌보고 목사로서 설교를 하는 것으로 목사다움을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혹시 목사다움은 목사의 소명, 혹은 목사 자신의 시선이 아니라, 성도들의 시선을 통해 비로소 목사다움이 인정되는 것은 아닐까? 만일 하나님의 시선이 성도들을 통해서 나타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시선은 도대체 어떻게 나타나는가? 분명 말씀을 통해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성도들의 시선을 무조건 하나님의 시선과 동일하게 보는 것도 문제일 수 있지만, 그것의 가능성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도 문제다. 인내천 사상은 지나친 점이 있지만 성령 하나님의 내주하심을 생각해본다면 진리적인 요소가 적지 않다. 따라서 목사다움은 무엇보다 말씀에 비춰서 결정되겠으나 다른 하나가 있다면 성도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성도들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목사됨을 주장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당분간 목사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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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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