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대중문화 읽기] "전쟁같은 2020년을 보내며" - 영화 <1917>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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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을 돌아보며 놓치기에 아까운 영화를 꼽으라면 <1917>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1917>은 올 초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기생충>의 경쟁작이었다. 당시 다수가 <1917>을 유력 후보로 예측하던 판세를 뒤엎고, 아시아의 한 작은 나라의 <기생충>이 상을 받았던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수상소감으로 오스카가 허락한다면 트로피를 다섯 조각으로 나눠 후보에 오른 다른 감독들과 나눠가지고 싶다”라고 말하며 거론했던 네 명의 감독 중 하나가 바로 <1917>의 샘 멘데스이다. 1차 대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토대로 하며, 그가 만들었던 여덟 번의 장편 중 처음으로 각본에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다.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등을 수상한 <기생충>이 계층 문제를 다루는 사회적 메시지와 미장센이 강점이라면, <1917>은 촬영상, 시각효과상, 음향 믹싱상을 받을 정도로 경이로운 기술적 완성도를 자랑한다. 영화에서 선보인 원 컨티뉴어스 숏이란 새로운 촬영 기법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 번에 촬영한 것 같은 효과를 보인다. 독일군의 함정에 빠진 1600여 명의 아군을 구하기 위해 191746, 영국 병사 스코필드(조지 매케이)와 블레이크(딘 찰스 채프먼)가 격전지인 서부 전선을 가로지른다. 그 험난한 여정을 쉼 없이 따라가는 카메라 워킹을 따라 관객들은 1차 세계대전의 한가운데 있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두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라이언 일병 구하기><태극기 휘날리며> 등 여느 전쟁 영화처럼 관전하는 이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강렬한 메시지나 영웅담, 혹은 전우애 위주의 서사와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을 기대했다면 실망할지 모른다. 하지만 <1917>은 적군과 싸우는 영화가 아니다. 긴박감을 불어넣는 영화의 실험적인 도전과 영상미 너머, 전쟁의 황폐함과 지리함을 한탄하듯 내뱉을 뿐이다.

식민지를 둘러싼 유럽 각국의 세력 갈등은 19141차 대전을 야기했다. 무인지대(No Man‘s Land)를 중간에 두고 독일군과 연합군이 서부 전선에서 수년간 대치하면서, 이 전쟁은 그저 죽음만이 쌓이는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벨 에포크 시대를 연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전은 참혹한 살상 무기를 양산해내었고, 진창 투성이 참호 속에서 사람들은 처참하게 죽어나갔다. 영화 <1917>은 이러한 1차 대전의 분위기를 잘 담아내고 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허버트 웰즈)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전쟁을 황급히 종결시킨 계기는 스페인 독감이었다. 비위생적인 전쟁터에서 지내다 모국으로 돌아온 군인들은 독감 인플루엔자를 퍼뜨렸고, 결국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으로 알려진 스페인 독감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코로나19로 전쟁 같은 사투를 벌이며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는 2020, <1917>의 이야기가 예사로이 보이지만은 않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끝나지 않는 싸움, 눈앞에서 친구와 동료들이 목숨을 잃더라도 애도할 여유가 주어지지 않던 1차 대전 당시의 전시 상황은, 끝없이 확산되는 코로나19와 맞서 싸워야 하는 막막함과, 언제 어떻게 확진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죽음을 맞은 가족의 얼굴도 마주할 새조차 허용되지 않고 한 줌 재로 만날 수밖에 없던 혼란스러움 같은 것들과 중첩된다.

오늘은 끝날 거란 희망이 있었다. 희망은 위험한 거지.” 스코필드가 대대장 매켄지 중령(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사령관 에린모어 장군(콜린 퍼스)의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하자 한 말이다. 어차피 죽음밖에 선택지가 없다면, 죽음으로써 기나긴 기다림을 끝내고 말겠다는 것. 그러나 모두가 죽음을 향해 길을 떠날 때, 생명을 살리기 위해 질주하던 한 군인을 떠올린다. 기술력에 가려져 간과되기 일쑤인 <1917>의 메시지를 찾는다면, 이것이 아닐까. 전쟁터 같은 삶의 한가운데를 살아가는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2020년을 마무리하며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이 글은 <한국기독공보>에 실린 글에서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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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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