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기의 溫 시네마-밍크코트] 현실을 딛고 일어선 구원에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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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하나님의 은혜로...’ 찬송가가 조용히 울리고 명순의 식사기도가 이어진다. 오랜만에 현순이네 온 가족이 남동생 준호네 집에 모여 식사를 한다. 현순의 늙은 노모를 가운데 두고 양 옆에 큰 언니 명순과 현순이 자리를 잡았다. 맞은편에는 준호 처와 아이들 사이에 준호가 앉아있다. 준호는 어릴 때 말 안 듣는 아이였다거나, 다이어트하는 현순은 고기만 먹는다는 둥 이런 저런 시답잖은, 그러나 뾰족한 얘기들이 다트처럼 날아가 서로에게 박힌다. 마치 설날에 모인 앙금이 남아있는 우리네 가족들의 모습과 같다.


영화 ‘밍크코트’는 의학적으로 살아날 가망이 없는 노모의 치료를 놓고 갈등하는 현순 가족의 부조리한 상황극이다. 어머니를 살리려는 현순의 명분과 치료를 중단하려는 준호를 비롯한 다른 가족의 실리는 첨예하게 대립한다. 그러나 각자의 명분과 실리는 자신에게 타당하지만 서로에게는 상처다. 마치 TV 프로그램 아침마당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남보다도 못한 가족들처럼.

2011년 서울독립영화제 대상과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 수상한 신아가, 이성철 감독이 공동 연출한 ‘밍크코트’는 2012년 상반기를 빛낼 가장 주목할 만한 한국영화중 하나이자 한국 기독교 극영화의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시나리오를 쓴 신아가 감독의 이름은 어머니를 따라 믿게 된 아버지가 아기와 같은 자만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는 말씀을 듣고 지어준 이름이란다. ‘밍크코트’는 그녀 외할머니 장례식에서 모티브를 차용했다. 현순 노모가 더 이상 현세에 미련 없다는 듯 병원 침상에 누워만 있은 지 8개월이 지났다. 식구들은 하나 둘 지쳐가고 준호는 병원비마저 부담이다. 어쩔 수 없다. 이젠 놔 드리는 게 어머니가 원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한 준호는 가족들을 설득한다. 현순만 반대다. 준호는 궁지에 몰린 쥐처럼 현순의 딸 임산부 수진이를 이 음모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인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이란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와 ‘밍크코트’는 어딘지 닮아있다. 기독교와 이슬람이라는 종교만 다를 뿐이지, 가족 간의 갈등 혹은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이나 살아가는 모습을 이야기 한다.

즉 보편적이다. 불교문화를 오래된 배경으로 갖고 있는 한국에서 현순이네 기독교 가정의 모습이 이러한 지극히 보편적인 감성을 획득한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기독교 가정’과 ‘연명치료중단’, 게다가 ‘방언’까지 한국사회에서 쉽지 않은 소재를 택한 패기 넘치는 신인 감독들은 이 이야기에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해라는 보편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여기에 위기를 맞은 현순의 딸 수진이를 살리기 위한 수진이 할머니의 희생은 대속과 구원이라는 기독교적 가치로 치환되어 그 보편성을 넘어섰다. 영화의 소품이자 제목인 ‘밍크코트’는 그렇게 할머니, 현순, 수진의 세대를 이어 온 믿음의 상징이자 구원의 징표이다.

‘지구를 지켜라’에서 신하균의 특별한 파트너 역을 했던 배우 황정민은 ‘밍크코트’에서 현순이로 완벽히 부활, 배우로서 에고를 확실히 다졌고,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인 준호역의 이종윤은 이 영화로 충무로와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받았다. 신아가 감독은 ‘가장 영감을 많이 받은 영화가 무엇인가’라는 나의 질문에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감독의 ‘오데뜨’라고 답했다.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엔딩장면으로 꼽히는 오데뜨가 죽음에서 부활하는 장면을 떠올린다면 충분히 공감한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디모데전서 5장 8절) 말씀은 이 영화에서 나에게 가장 울림을 준 말씀이다.

결국 ‘밍크코트’는 현순 자신의 시기심과 질투로부터의 구원과 가족 하나하나와 모두의 구원을 말하고 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크리스천은 현순이의 ‘밍크코트’를 통해 자신을 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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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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