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시대의 창조신앙] 다섯 번째 이야기: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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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시대의 창조 신앙 앞으로 6회에 걸쳐 발표한 글들은 필자가 최근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10집(2018.10)에 발표한 논문(“과학 시대의 도전과 기독교교육의 과제”)의 내용을 일부 편집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급속한 발달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촉발하면서 전통적인 인간중심주의 세계관의 붕괴를 가져왔다. 이제 인간은 지구상의 생명의 역사에서 유인원을 비롯하여 다른 동식물들과 공통 조상을 공유하는 한편, 생명의 그물망 속에서 다른 유기체들과 상호 의존적 관계 속에 살아가는 존재로 이해된다.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등 기계 문명의 발달은 앞으로 기계화된 인간과 인간화된 기계가 공존하는 미래를 내다보게 하며, 4차 산업혁명의 진전은 인간의 노동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만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학 시대 창조 신앙은 변화하는 인간관의 도전에 응답하여 기독교 인간관을 새롭게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지난 이천 년의 기독교 전통 속에서 간과되거나 왜곡되었던 성경적 인간관에 대한 재해석을 의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변화하는 세계관과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전통적인 인간중심주의 세계관의 붕괴는 기독교 인간론의 몰락이 아니라 성경적 인간론의 회복을 의미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 시대 창조 신앙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자연과학의 통찰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전통적 기독교의 왜곡된 인간중심주의 세계관을 극복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것은 자연과학의 통찰로부터 기독교 인간론의 핵심 진리를 도출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현대 과학의 통찰은 인간의 피조 세계의 일원으로 보고 인간과 동물 사이의 유사성을 강조하며 창조 세계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성경 구절들을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눈을 열어줄 수 있다. 

한편, 현대 과학이 보여주는 137억 년의 광대한 우주 역사와 우주 공간에 비추어볼 때 인간은 지극히 짧은 역사를 가진 보잘 것 없는 존재처럼 보인다. 또한 우주의 역사와 생명의 역사가 펼쳐지는 과정에 대한 과학자들의 연구는 인간의 출현이 우연적이고 맹목적이고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까지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적지 않은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우주와 생명의 역사를 성찰하면서 허무주의적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것은 오늘날 과학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창조 신앙에 대한 도전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기회가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과학 시대를 살면서 현대 과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찾고자 하는 더 큰 갈망을 갖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인간관은 현대 과학이 아니라 현대 과학이 알지 못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 과학이 제시하는 인간관 때문에 고민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인생의 근원과 목적, 본성과 운명에 대한 전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 과학 시대 창조 신앙의 과제 중 하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과학 시대를 사는 현대인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복음에 기초한 대답을 제공하는 일이다.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미래에 대한 과학 시대의 전망과 관련해서도 기독교 인간관은 오히려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을 힘입어 질병, 노화, 죽음 등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는 데 큰 의의를 부여하고, 이를 가능하게 해 줄 것으로 보이는 과학기술의 개발을 적극적으로 격려하며 수많은 자본을 유치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이 같은 시도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피조물로서 가진 근본 조건을 부정하는 왜곡된 인간 이해를 기초로 하고 있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그리는 미래 인간 세상은 결코 인간에게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 여기에서 건전한 창조 신앙은 인간의 본성과 운명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발견하는 기독교 인간 이해를 적극 개진하면서 과학기술에 기대어 허망한 꿈을 좇는 사람들에게 참 생명의 길을 보여줄 수 있다. 

또한 인공지능이 활보하는 시대가 곧 도래할 듯 보이는 오늘날, 미래 진로를 준비할 때 앞으로 사라질 직업과 새로운 시대에도 여전히 경쟁력 있는 직업을 구분하고 후자에 적합한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바람직한 기독교 신앙은 여기에 머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롬 12:1). 

과학 시대의 기독교 신앙은 과학기술이 선도하는 세계 변화를 좇아가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라시는 세계의 모습에 비추어 과학기술을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이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과학기술이 가져오는 변화에 빨리 적응해서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고 애쓴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 신앙은 과학기술이 추구해야 하는 목적과 의미와 가치에 대한 반성을 촉구해야 한다. 다음세대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 아이들이 과학기술 시대에 끌려 다니기보다는 오히려 과학기술 시대를 선도하는 지도자가 되도록 격려하며, 인간성을 왜곡하는 과학기술의 개발을 막아서는 한편 참 인간성의 회복을 가져오는 과학기술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 되도록 분별력과 영향력을 길러 주어야 한다. 


김정형 교수(장신대) 예수님을 사랑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평화의  나라를 소망하고, 교회의 미래를 고민하며, 과학 시대를 살아가는 신학자. 우주의 종말에 관한 신학과 과학의 대화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 작성, <분단 한국을 위한 평화의 신학>의 저자,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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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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