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과학-2]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고? 찰스 다윈의 진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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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의 과학 교육을 세파로 인해 망각한 탓일까? 일선 교회들에서 마주하게 되는 적지 않은 수의 교인들은 아래의 그림을 보면서, 진화론이 “원숭이로부터 인간이 출현했음”을 가르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것이 찰스 다윈이 이야기했던 진화론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그림1. 그림자료는 서울신문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424025003]


4년 10개월 동안 박물학자로서 비글호를 타고 남아메리카를 탐험한 다윈은 갈라파코스 군도를 방문하였을 때, 먹이 환경이 다른 섬마다 서로 다른 형태의 부리를 가진 새들이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딱딱한 종류의 씨앗이 먹이로 주어진 섬에서는 해당 씨앗을 부순 후 먹을 수 있는 짧고 뭉툭한 부리를 가진 새들이, 작은 벌레가 먹이로 주어진 환경의 섬에서는 그것을 낚아챌 수 있는 형태의 부리를 가진 새들이 주로 서식하고 있는 것을 관찰한 것이다. 하지만 다윈이 해당 관찰로 부터 바로 진화과정을 추론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각 섬마다 서식하고 있는 새들이 너무도 큰 차이를 보여주었기에 서로 다른 종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다윈은 조류학자였던 존 굴드(John Gould)에게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수집해온 자료들을 보여주었고, 굴드를 통하여 자신이 관찰한 상이한 부리를 가진 새들 모두가 핀치새 종임을 확인하게 된다.

다윈은 자신이 수집해온 관찰 자료들을 토대로 각 생물체들이 계속해서 변화한다는 점, 해당 변화는 자손 세대로 내려오고, 그렇게 유전되는 변화들은 그 생명체들에게 주어진 환경 내 생존의 유불리를 가져온다는 점, 그러한 바 기존의 생명체와 변화가 일어난 생명체 사이에 생존력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종합하여 생물발생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고안해낸다. 다시 말해, 모든 생명체들은 변화하며(i.e. 변이), 그 변화는 다음세대에 유전되며(i.e. 계승), 그렇게 변이가 계승되는 일군의 개체들과 기존의 개체들 사이의 생존력 차이로 인해 어떤  개체들은 살아남고, 다른 개체들은 그렇지 못하게 된다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개념을 제시한 것이다.

“변이”와 “자연선택”을 진화과정의 원인들로 규정한 후 다윈은 “생명의 나무”(그림2)라는 도식으로 모든 생명체의 발생을 이야기한다. “작고 따뜻한 연못”으로부터 출현한 최초 생명체들은 이 나무의 뿌리 혹은 시작점과도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단일한 종이었던 최초 생명체들 내 변이들이 점차 나타난다. 특정 개체들의 변이들은 자손 개체들에 유전 된다. 이렇게 같은 종 내 서로 다른 특징들을 가진 개체들이 점차 확산된다. 더욱 시간이 흐르면서 기존의 변이들을 뛰어넘는 차원의 새로운 변이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같은 종 내 이러한 변이들이 축적되면서 더 이상 상이한 개체들 사이에 교배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에 이른다. 하나였던 종은 교배 가능한 개체들끼리 구분되고, 점차 다른 종들로 분화된다. 하나의 시작점으로 출발했던 생명체들은 앞선 과정을 거쳐 무수히 많은 상이한 종들로 가지쳐 나오게 되었다. 이것이 다윈이 “생명의 나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하는 진화의 역사이다.

[그림2. 그림자료는 다윈이 초기에 생각하였던 “생명의 나무.” 초기의 다윈은 A,B,C,D..등으로 표현했듯이 최초의 생명체들은 하나의 종이 아닌 여러 종들로 창조되었고, 그로부터 진화과정이 발생하였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는 후대에 자신의 생각을 바꾼다. UC 데이비스의 생물학자 조나단 아이센 교수의 블로그, https://phylogenomics.blogspot.kr/2008/06/top-five-metaphors-darwin-considered.html]


그러므로 “원숭이로부터 사람이 진화했다”는 말은 다윈이 이야기하는 진화론이 아니다. 그림 3이 보여주듯 현존하는 원숭이, 침팬지, 고릴라 등은 현생 인류의 조상이 아니다. 그들은 약 5000만년 전 존재 하였을 인간과 유인원 모두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다른 종들이다. 그 조상으로부터 무수히 많은 변이와 자연선택을 거쳐 생명나무의 한 가지는 원숭이로, 다른 가지는 사람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니,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또한 한 없이 먼 지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시다시피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 발생에 관해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간단한 이론이다. “다윈의 불독”으로 널리 알려진 당대의 저명한 생물학자 겸 철학자였던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는 “종의 기원” 초고를 읽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전해진다.

“어리석게도 난 왜 이런 단순한 생각을 하지 못했던가!”

[그림3. 그림자료는 http://www.chrismadden.co.uk/where-are-we/chapters/chapter-16.html]


비글호 탐사에서 돌아온 다윈은 1837년에 이러한 생각에 도달 하였지만, 1859년 “종의 기원”을 출판하기까지 자신의 생각을 널리 알리지 않았었다. 다윈의 당대에는 생명의 각 종들이 특별한 방법으로 창조 되었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의 저변에는 확실히 기독교적 가르침이 일조한 부분이 있는 듯 하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다윈 당대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진화이론을 거부 했을까? 이 질문은 우리가 다음번에 다루어 볼 것이다 :)

정대경(명지대학교),
학창 시절 배운 자연과학 이론들 때문에 종교에 회의적이었다가, 회심 체험 후 기독교인이 되었다. 장로회신학대학교와 샌프란시스코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GTU)에서 “생명의 기원과 하나님 행위(Divine Action)”로 논문을 쓰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명지대학교에서 교목 및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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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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