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으로 영화 <잃어버린 도시 Z> 읽기 -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한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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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이게 하는 영화의 힘

개인적인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필자의 영화 이해에 대한 배경이라 생각해서다.

필자의 기독교적 영화보기와 전문적인 영화연구는 <뷰티플 마인드>(론 하워드, 2002)를 감상한 계기로 시작한다. 영화적인 표현과 관련해서 놀라운 경험 때문에 세 번을 연거푸 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영화는 실화에 근거한 것인데 박사학위 논문에서 다룬 게임이론이 경제학 이론에 미친 영향으로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정신분열증 환자 존 F. 내쉬(John F. Nash)의 일대기를 그렸다. 영화를 감상하면서 필자는 다중 세계를 표현하는 일에서, 특히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시화하는 일에서 영화적인 표현이 매우 탁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직신학자로서 살면서 하나님나라를 기술하고 또 그것을 현실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설명할 과제를 갖고 있는 필자에게 영화는 신학함의 또 다른 방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능성이 무한한 매체임에는 분명해 보였다. 이어지는 영화연구 과정에서 상업영화에 관한 기독교적인 에세이나 평론의 글을 썼고, 영화적인 글쓰기를 매개로 신학적인 사태와 주제들을 설명하는 가능성을 거듭 실험하는 중에 영화를 통한 하나님 경험이 가능하며, 또한 영화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나라에 대한 경험을 매개할 수 있는 도구일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영화는 신학함의 한 방식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후 필자는 기독교와 영화의 관계에 천착하여 영화연구를 하였고, 수많은 영화 에세이와 평론 및 논문을 쓰면서 영화를 통한 신학적인 주제에 대한 성찰을 시도하였다. 이것은 순전히 보이지 않는 세계, 곧 하나님나라를 가시적으로 또 지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길 바라는 필자의 바람에서 비롯한 결과였다. 

이제 시선을 기독교로 옮겨보자. 하나님나라는 성경에 기록된 단서와 경험한 사람들의 간증만 있을 뿐 사실 본인 스스로 경험하지 않으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곳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또 그의 말씀과 약속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나님나라의 임재를 기대하고 또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길 소망할 수 있을 뿐이다. 엄밀히 말해서 하나님나라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 나라가 약속대로 임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곳이다. 정경으로 채택된 성경이라는 단서와 100% 믿기 어려운 증언들만 있는 상태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은 사실 어렵고도 긴 순례의 길에 나선 사람이다. 번연(John Bunyan)이 쓴 “천로역정(Pilgrim Progress)”에서 볼 수 있듯이, 순례의 여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방해세력과 위협적인 존재 그리고 유혹을 만나게 되고,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극복하는 과정을 거듭한다. 순례의 길에 오른 그리스도인에게 관건은 인생의 온갖 부침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멈추지 않고 인내하면서 믿음을 지키며 완주하는 것이다. 순례는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 계속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 곧 하나님나라는 비록 이 세상에서는 감각적으로 확인할 정도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순 없어도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필자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조직신학자로서 영화를 통해 하나님을 말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비록 영화를 통해 하나님나라를 온전히 밝힐 수는 없겠지만, 예술로서 영화는 기독교인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나라의 실재를 경험하고 또 어느 정도는 지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나라는 비록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는 없어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영화적인 상상력을 통해 드러나는 여러 단서들을 매개로 하나님나라를 기술하고 또 그것을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걸 필자는 신학적인 탐구의 과제로 인지하고 있다. 서두를 이렇게 거창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한 탐험가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가 필자가 그동안 추구해왔던 일들을 새롭게 상기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영화 이야기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해보자. 


유럽우월주의 사회에서 아마존 고대 문명을 확신하다

탐험이란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고 또 그것을 인지 가능한 형태로 소개할 목적으로 작은 단서에 의지하여 혹은 아무런 단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오지로 가서 조사하는 인간의 모험적인 행위를 말한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을 탐험가라 한다. 영화는 탐험가 퍼시 포셋(Percy Fawcett)의 이야기다. 

데이비드 그랜의 동명 베스트셀러 원작(‘The Lost City of Z’)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이 영화를 탐험에 관한 이야기로 생각하고 관람한 사람들은 분명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작에서 소개된 탐험에 관한 서술에 비하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단순하게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정글에서 마주치는 극한 상황들이 과감하게 생략되었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소설에서 기술된 매우 복잡한 사건들을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연출하여 특히 퍼시 포셋이라는 영국 출신의 전설적인 탐험가 개인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특히 탐험가로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그가 가족과의 관계에서 겪어야 했던 갈등을 통해 아마존의 고대 문명에 대한 그의 멈출 수 없는 열정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영화 관람의 관건은 탐험 자체보다는 아마존 탐험에 대한 퍼시 포셋의 열정에 담긴 의미를 포착하는 것이다. 

영국의 포병장교 퍼시 포셋(찰리 허냄)은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스리랑카 지역에서 근무하면서 뛰어난 탐사 능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이 때문에 그는 1906년 영국 왕립 지리학회의 위임을 받아 브라질과 볼리비아의 경계를 확정하는 지도를 그릴 목적으로 오지의 아마존을 탐험한다. 당시 고가로 매매되던 고무나무 재배로 양국 간 분쟁이 잦아지는 것이 오히려 영국의 이익에 반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포셋이 생명을 잃을 위험이 현저한 아마존 오지 탐험에 동의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주색에 빠져 가산을 탕진했을 뿐 아니라 가족의 명예에 큰 오점을 남기고 사망한 아버지의 그늘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도제작을 위한 탐사에 성공하면 실추된 명예가 회복될 것이란 기대가 작용한 것이다. 

첫 번째 아마존 탐험에서 포셋은 우연히 고대도시의 흔적들을 발견한다. 조기에 목적을 달성하여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지만, 정작 학회 회원들 앞에서 고대도시의 존재 가능성을 주장했을 때 그는 학회회원들의 외면과 조롱에 직면해야 했다.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는데, 야만인이라 부르며 열등하게 여긴 아마존 오지의 원시인들에게 문명을 상징하는 도시가 있었다고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시 유럽문명중심의 사고를 바탕으로 타자에 대한 편견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학회 회원들의 거센 반대와 조롱에도 불구하고 포셋은 다시금 자신의 신념을 확증할 고대문명을 찾으러 아마존 탐험에 나섰으나 여러 이유로 실패했고, 마지막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마친 후 58세가 되던 해에 탐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들 잭(톰 홀랜드)과 함께 탐험에 나섰으나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와 그의 아들 잭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아마존 오지에 있었던 고대 도시문명에 관한 그의 주장은 학계에서 오랫동안 무시되었다. 그러나 아마존 탐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그의 주장은 사실로 밝혀졌다. 그 후로 그는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잃어버린 도시 Z>는 탐험가 퍼시 포셋의 이상을 향한 결코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유럽문명에 대한 우월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결코 인정할 수 없었던 그의 확신, 곧 아마존 오지에 이미 고대 문명이 있었다는 확신이 갖는 시대적인 의미에 관한 성찰을 담은 이야기다.  


그리스도인의 과제

제임스 그레이 감독이 논픽션 탐험소설에 바탕을 두었다 해도 특별히 원작의 내용을 과감하게 생략하면서까지 영화를 통해 말하려는 것은 이 두 가지 포인트로 귀착한다. 다시 말해서 오직 몇 개의 단서만 존재할 뿐 아직 그 존재가 입증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당시로서는 유럽 우월주의적인 선입견 때문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확신을 퍼시 포셋의 탐험정신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문명의 세계에 안주하려고만 하고 또한 사실은 넘쳐나지만 상상이 결여된 시대에 대한 경종이라 볼 수 있다. 

서두에서 언급했지만, 필자는 퍼시 포셋의 이야기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것에 대한 과학적인 혹은 이성적인 사고에 기반을 둔 온갖 편견에 맞서 싸워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과제를 인식할 수 있었다.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오직 지시와 약속만을 바라보며 불안정한 삶 속에서 살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본다. 뿐만 아니라 믿음의 순례 과정에서 만나는 온갖 조롱과 위협에도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오직 당신만을 신뢰하길 원하시기 때문이며 또한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약속으로서 반드시 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하나님나라를 경험한 사람들은 결코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비록 다시 세상으로 돌아간다 해도 그것은 오직 동굴 속에 평생 머물러 있어 그림자를 실재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빛의 세계를 증거 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나라는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며,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없다고 해서 작용이 없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나라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이며,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은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안에서 성령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이다. 

비록 두 사람이 행방불명으로 처리되었지만, 소문에 따르면 퍼시 포셋은 고대문명을 발견한 후 그곳에서 평생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 소문처럼 만일 살아서 하나님나라에 있게 된다면 누구도 세상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영광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고 그곳에 평생 머물러 있길 바라는 말을 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곳이 어떤 곳임을 말해주고, 또한 에녹과 엘리야가 살아 있는 채로 이 세상에 부재하게 되었다는 기록은 바로 이 사실(살아서 하나님나라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증거 하는 건 아닌지 싶다.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나라를 경험하는 자가 충분히 있을 수 있거니와 그 나라에 있는 자는 이미 하나님의 영광중에 거하기 때문에 욕망에 따라 세상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결코 볼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광의 자리에 초대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나라이다. 


최성수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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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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