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2019년에 다뤄져야 할 5가지 파격적인 교회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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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모든 것이 이전보다 더 빨리 변하는 것 같은 이때에, 2019년에는 교회 지도자가 어떤 동향에 관심을 두어야 할까?

지난 3년간, 파격적인 교회 동향에 관한 글을 쓰며 새해를 시작했다. 이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동향은 몇 년 지난 것들이지만, 이들 모두는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문화적 변화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글

2018년 7가지 파격적인 교회 동향

2017년 6가지 파격적인 교회 동향

2016년 5가지 파격적인 교회 동향

이 문제가 정말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 문화의 정보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의미는 부족하다.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아는 것과, 무엇을 할지 어떤 동향이 가장 중요한지 아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둘째, 문화에 일어나고 있는 파격적인 동향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지도자는 지도의 자격을 잃을 것이다. 변화를 보지 못하는 지도자는 결국 자동차가 다니는 시대에 자전거를 타고, 온라인 쇼핑몰보다는 근처 가게를 이용하며, 디지털 카메라 시대에 필름을 넣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음 세대와 소통하고 싶다면, 변화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지도자에게 사명을 더 잘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2019년의 대화와 행동을 정의하면서 5가지 파격적인 교회 동향을 소개한다.


1. 인기 있는 교회가 주춤하는 동안 교회의 은사적 표현을 강조하는 교회는 성장할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충분히 논의되지 못한 동향이 생겨났다. 은사적 표현을 강조하는 교회는 거의 모든 교회에서 성장세를 보이는데, 이들 교회는 예배와 설교, 문화에 대하여 더 은사적인 표현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은사적’이라는 의미를 ‘신학적으로’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요즘 대부분 성장하는 교회는 이와 관련된 것처럼 보이고, 이런 교회는 예배와 교육, 그리고 가르치고 모으는 방법이 좀 더 의미심장하고 은사적이다.

몇몇 특징은 이런 동향으로 종합해 볼 수 있다.

단순히 수동적인 대중들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예배하는 예배.

머리에 말하는 것 뿐 아니라 가슴에 말하는 설교자.

그들이 가르친 만큼 강하게 설교할 수 있는 전도자들.

규모와 상관없이 어쩌다 모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며 실제 서로 관계를 맺는 성도와 그들의 사명.

내재 뿐 아니라 초월의 순간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은 개인적이다. 더 감정적이다. 더 진짜 같다. 그리고 당신은 이를 느낄 수 있다. 


이런 논리와 정의에 허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이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필자(캐리 니호프, Carey Nieuwhof)는 영광스럽게도 매해 전 세계에 연설하며 수천 명의 지도자와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그저 필자가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일은 자유롭고, 특히 잘 정의되지 않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순전히 인기 있는 교회가 점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서 ‘인기 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한다.

이런 교회의 찬양대는 예배의 자리에서 사람을 이끌기 보다는 그저 소리를 낸다.

소통하는 설교자가 가슴이 아닌, 머리에 설교하고, 설교하기 보다는 가르친다.

성도는 교회의 크기와 상관없이 관계를 맺기보다는, 어떤 행사를 경험하기 위해서 어쩌다 모인다. 

초월한 생각보다는 머물러 있는 데 더 초점을 맞춘다.


왜 그럴까? 이 블로그에서 5가지 이유를 보면, 배경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위에서 보았듯이, 최소 우리가 앉은 곳에서, 이런 변화를 주도하는 두 가지 문화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첫째, 여기 요약했듯이, 입구가 바뀌었다. 인기 있는 교회의 특성은 누군가 교회에 첫 발을 딛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정말로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라고, 인터넷이 있기 때문에 교회에 출석하는 거의 모두가 인터넷을 먼저 본 적이 있다. 혹시 지금 교회에 인터넷 예배가 없다 하더라도, 거의 모든 사람들은 누군가의 예배를 인터넷으로 확인하거나 몇 가지 질문을 통하여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다.

이것은 인터넷 예배가 있으면, 더 깊게 더 빠르게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학생처럼 깊게는 아니지만, 진짜인지 알고 싶기 때문에 진짜인지 알 만큼의 깊이를 보여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둘째, 청년들이 깊은 관계와 초월성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소음과 분노의 불협화음과 같은 세상에서, 손가락만 움직이면 언제든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시대에, 청년들은 그들을 넘어 어떤 것, 그 누군가를 찾고 있다. 또한 줄어들을 수 없고, 전혀 설명되지 않으며 말로 한정할 수 없는 경험을 찾고 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시다. 하나님의 사명은 우리보다 크시다. 우리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모든 것보다 크시다.

그러다 전체 관찰 일화를 통하여 이 동향을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2018년에 사람들이 크리스마스트리를 훨씬 더 일찍 세운 것 같다는 것을 인스타그램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운 것이다. 더 깊게 파보며, 알게 된 사실이 무엇인지 아는가? 이런 행동을 보인 사람들이 거의 35세 이하였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추측이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점점 불안정하고 타락해져가는 세상에서, 청년들에게 크리스마스트리와 빛과 장식은 경이로움과 평안함 그리고 안정감을 떠오르게 한다. 아련해 보이기도 하고, 대담한 선포이기도 하고, 또는 약간 둘 다인 경우로, 현명한 지도자는 어떻게 하면 교회가 조금 더 그렇게 보일 수 있게 만들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불확실한 시대에 교회가 경이로움과 평안함, 안정감을 줄 수 없다면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어느 쪽이든, 깊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문화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엄청난 기회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언론에서 들을 수 있는 절망감과는 다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두는 현재 정말 인기 있는 교회에게는 큰 기회이다. 이것은 갑자기 접근하기 어렵다거나 완전히 다른 것에 대한 것들이 아니다. 말투와 표현, 집중의 변화는 모두에게 경험을 재조명할 수 있다. 

목표가 특이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관계에 있는 것이다.


2. 인터넷 예배는 뒷문이 아니라, 정문과 측문으로 진화할 것이다.

교회 ‘인터넷 예배’의 범위에 대한 논의가 진행 되고 있다. 

로라 터너(Laura Turner)는 ‘뉴욕 타임즈’에 도움이 될 만한 글을 썼고, 인터넷 예배는 실제 예배와는 같지 않다고 주장했다. 로라 터너는 이 블로그를 인용해서 로라 터너의 글에 관해 이메일을 통해 짧지만 굉장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필자는 로라 터너에게 동의하고, 지역 교회 지도자로, 정말로 그 관점을 이해한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에 너무나 자주 우리의 대화가 두 부분으로 나뉜다는 것이 인터넷 예배의 논의에서 놓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 예배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지혜롭기도 하고 바보 같기도 하다. 그저 구색만 맞춘 것이기도 하고 훌륭하기도 하다.

필자가 생각할 때 인터넷 예배는 미래에 적용된다. 가까운 미래에, 인터넷 예배는 거의 전적으로, 뒷문이 아니라, 정문과 측문이 될 것이다. 

인터넷 예배의 초기에서는, 인터넷은 뒷문의 기능을 했다. 소비자 중심이고, 단절되거나 게으른 기독교인이 뒷문을 통해, 따뜻한 침대의 안락함과 러닝 머신이나 교통의 편리함을, 운전과 교통체중에서 오는 시달림과 바꿨다. 교회를 향한 기본 마음가짐이 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인터넷 예배는 실제 예배보다 훨씬 더 쉬운 방법이 된다. 

그러나 이런 기독교인은 멸종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인터넷 예배를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고, 빠르게 그 배경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지만, 정직하게 보면 대부분이 하나님 나라와 무관한 것들이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를 오직 이어폰으로만 맺는다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이런 집단은 이미 헌신자가 아니라 소비자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 위에 교회의 미래를 세울 수 없다. 전도는 참여의 움직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뒷문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흘러가는 사람들이다. 예배만 드리고 절대 헌신하지 않는 평범한 관찰자도 마찬가지이다. 거기에 미래는 없기 때문에, 그 길에서 멀리 떨어지기를 바란다.

인터넷 예배의 미래는 뒷문 인터넷에 있지 않는다. 교회의 미래는 정문과 측문의 인터넷에 있다.

인터넷 예배는 호기심이 있고, 회의적이고,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정문이 될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첫 정거장이 될 것이고, 조금은 두려워서 실제 참석까지 뛰어들 용기를 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임시 휴식 장소가 될 것이다.

필자가 섬기는 커넥서스(Connexus) 교회에서 발견하고 되는 것은 처음 출석하는 거의 모든 사람이 몇 주나, 몇 달, 혹은 일 년 넘게 인터넷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문을 통과하여 인터넷 예배를 드린 것이고, 실제로도 그렇다.

인터넷 예배는 또한 특정 주일에 여행을 가거나 참석할 수 없는 기독교인들에게 측문이 된다. 이런 점에서, 측문은 사람들과 연결시켜 주기 때문에 참여를 고취시킨다. 이제는 우리의 삶이 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변화 과정 때문에 이들은 주일이나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이에 관한 글은 여기를 보면 된다.

그러나 잠깐, ‘직접 예배를 드리러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라고 말할 수 있다. 자, 그때는 측문이나 정문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은 인터넷 예배를 뒷문으로 드리는 소비자가 되는 것이고, 우리가 이미 보아왔듯, 거기에는 미래가 없다.

이번 달 후반에 이 문제에 대하여 글을 쓸 예정지만, 그동안, 여러분 교회의 인터넷 예배를 어떻게 사용해서 새로운 성도를 위해서는 정문 진입로로, 바쁜 성도를 위해서는 측문 진입로로 만들어갈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뒷문은 잊어야 한다. 무의미하다.


3. 교회와 단체는 실제처럼 인터넷 예배에 사람을 배치할 것이다.

위에 정리된 여러 이유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사람을 인터넷 예배에 배치할 필요가 없는 초대형 교회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교회는 인터넷 예배가 진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천 명이 넘는 교회조차, 대부분의 교회는 만들어지는 부서에 구인란을 올리는 정도로 온라인 분야를 개발하고 있다. ‘여기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세요. 인터넷에 올린 설교를 들으시겠어요?’ 정도이다. 그래서 이런 교회는 어쩌다 5년마다 한 번씩, 다음 5년의 문제를 수정하기를 바라며 사이트를 제대로 잘 작동할 누군가를 고용하기 위해 얼마간의 돈을 할당한다.

문제는? 상당히 많은 교회가 온라인이 아닌 실제 구인 비용에 99%를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점차, 올해 많은 교회가 구인 비용에 1%를 쓰며 인터넷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이게 중요한가?

자, 1번과 2번 동향에서 보았듯, 인터넷은 생명에 다가가려는 전체 공동체의 장이다. 사람들에게 다가가기를 원한다면, 재원의 1%를 쓰는 것은 가장 스마트한 전략이 아닌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근본과 관련됐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에게 인터넷으로 다가가기 위해서 30%의 재원을 사용하는 인근 교회가 있는가?

필자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비밀은 풀렸지만, 왜 인터넷 세상으로 뻗어 나가 더 직접적인 결과를 내지 못하는지 이유가 궁금해진다.


4. 소비자 중심으로 다가가는 교회는 힘을 잃을 것이다.

1980년에서 몇 년 전까지 많은 교회의 성장은 소비문화의 시대에 산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교회가 이끌었다. 그런 접근에 항상 비판적이었지만, 정말 큰 결과를 낳아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실제로 예수님과 교회를 많이 따랐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어서 그런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소비자 중심의 기독교는 사명과는 관계가 없고, 짜내는 것에 불과하다.

지난 10년간 디지털 시대의 폭발로 그 어느 때보다 시장이 활발히 펼쳐진다고 느끼고 있는데, 이는 사람들이 1번 동향에서 보았듯 대안을 찾는 것이다. 

“우리 교회로 오세요. 우리가 가장 최고/멋진/핫한/정통인/무엇이든 최고이다.”라고 접근하는 교회는 사람들을 붙잡아 두는 데 기초가 부족할 것인데, 이는 이 시대가 내용이 어디서나/어떻게나/어디든지 소비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내용을 소비하는 것은, 지정된 시간에 한 장소로 운전해 가서 뒷줄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러닝 머신 위나 출퇴근하며 하기 훨씬 더 쉽다.

결과적으로, 많은 소비자 중심의 기독교인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고, 남아 있는 성도도 떠날 것이다. 더 큰 사명을 위해 모이고 헌신하는 것보다 그저 어디서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소비자 중심의 예배자가 떠나는 것을 보면 잃은 것은 많지 않게 된다. 관계를 맺지 않는 사람들 위에 교회의 미래를 세우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그들이 떠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5. 사람들은 좋지 않은 근로 문화를 모면하려고만 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 방식으로, 2017년과 2018년에는 인권 침해의 직장과 상사에 대한 인식과 치명적인 환경에서 일하거나 치명적인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려 하지 않는 의지 둘 다 높아졌다.

이것은 좋은 일이고, 그리고 필요했다.

직장 내 성문제와 존엄성과 도덕성은 주어진 것이지만, 나쁜 문화는 단순 성문제보다 더 깊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도를 이끄는 너무나 많은 교회 지도자가 하나님의 나라와 전혀 맞지 않는 집단 문화를 만들어간다. 거만한 리더십, 이기적 조작, 사무실 정치, 나쁜 소문, 기만행위는 훨씬 더 많은 문화를 죽여 왔고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악영향을 끼쳐왔다. 이런 모든 일은 피해자를 도출했는데 이들은 하나님과 일을 하지 않고, 교회와 일을 했다고 말한다. 여기에 그 답을 썼다.

냉소가는 믿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모두 기독교 직장과 연관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간은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약간의 수치는 상당히 높다.

또, 다시, 냉소적인 사람에게는, 이것은 단순히 교회 문제만이 아니다. 인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10분 동안 교회에서 나와서 어느 회사 문화나 비영리 회사 문화에 들어가 보면 유사하게 복제된 문제를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 인간은 구원이 정말 필요하고, 죄악과 상처의 자리와 통한다. 이에 예외란 실로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문화가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고, 결국 우리 교회와 단체는 약함보다는 집단적인 힘을 반영해야 한다.

일명 Y세대라고 불리는 청년들이 대학을 떠나고 일터에 진입하면서 더 건강한 일터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전 세대가 참았던 고통을 자신들은 참지 않을 것이라고 큰 목소리로 지체없이 알리고 있다.

직장에 다니든 자원봉사를 하든 자영업을 하든지, 이 세대는 결국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일한다는 것을 알렸다. 그리고 빈틈없는 사장으로 일하는 청년은 결과나 사람보다 큰 목적을 위해서 일하고 싶어 한다.

결국, 청년을 대하는 방식이 봉급을 주는 방식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오늘날은 아무리 봉급이 많아도 어떤 고통을 보상해 주지는 않는다고 믿는 시대이다. 더불어 여기 Y세대를 이끌고 함께 일하는 데 필요한 7가지 요점을 소개한다.

이 중 나쁜 것은 하나도 없다. 사실, 새롭다.

직장과 집단 문화를 말할 때 정말 새로운 날이 왔고, 이는 또 좋은 일이다.

문화적 가치가 이전보다 더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지지하는 가치에 의거해 살아간다는 것은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보다 더 중요해 질 것이다. 가치는 액자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진정성과 성실함은 어느 지도자에게나 가장 중요한 특성이고, 특히 현대 문화에 필요하다. 이것은 언제나 기독교인의 본보기가 됐어야 할 덕목이다.

우리의 문화는 가장 좋은 사람들, 직원과 봉사자를 유인하고 곁에 두는 가장 중요하고 빠른 방식이 되어가고 있다.

위대한 문화는 위대한 사람들을 곁에 두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치명적인 문화는 이들을 쫓아낼 것이다.


2019년 더 좋은 문화, 더 좋은 당신을 만들고 싶은가?

우리가 지도자로서 깨려고 하는 모든 비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스스로를 잘 이끌어가는가이다. 스스로를 잘 이끌어가는 만큼 남도 잘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그렇듯이 바로 여행이다. 필자에게도 그래왔다.

최근 서적 <Didn't See It Coming>을 공유할 수 있어서 너무나 기쁘다. 

이 책에서, 필자는 거의 모든 지도자가 경험하지만 거의 누구도 예상하지 않은 7가지 문제를 요약하였다. 이는 지도자를 좌지우지하게 되는 문제이다. 냉소주의, 자만, 소진, 무책임과의 싸움이 목회를 떠나거나 리더십을 떠나게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런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면 여전히 우리의 가능성을 뒤엎고 우리의 집단 문화를 사장 시킬 수 있다. 이 책의 대부분은 건강에 대한 필자의 여정이다. 긴 여정이고, 불완전한 여정이다. 모든 것을 바르게 세울 수 없지만, 개인적이고 영적인 분야가 주는 건강의 차이는, 삶에서나 리더십에서, 정말 놀랍다.

여러분이 영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또한 리더십에서 발전하기를 바라면서 글을 썼다. 수천 명의 지도자는 개인적이고 영저연구뿐만 아니라 집단 토론과 독서와 이행을 위해서 이 글을 사용하고 있다.

다른 지도자는 어떻게 평가할까? 라스베이거스 ‘센트럴 교회(Central Church)’의 담임 목회자인 저드 윌하이트(jud wilhite)는, <Didn't See It Coming>를 ‘매해 읽어야 할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표현한다. 브라이언 휴스턴(Brian Houston)과 앤디 스탠리(Andy Stanley)는 ‘힘 있다’고 표현한다.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Drive and When>의 작가, 대니얼 핑크(Daniel Pink)는, “이 책은 정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이 책을 확인하고 싶다면 여기에 있다.


무엇을 보고 있는가?

이것이 2019년 필자가 보는 파격적인 동향이다.

이를 함께 해서 너무 좋다. 우리가 흩어져 있을 때보다 함께 할 때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여기 이 블로그와 리더십 팟캐스트에서 더 파고들 것이다.

이를 대화의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 동안, 2019년의 동향이 뭐라고 보는가?


이 기사 원본은 여기에 있다.

캐리 니호프(Carey Nieuwhof)

강사이자 팟캐스터인 캐리 니호프는 전직 변호사이자 커넥서스 교회(Connexus Church)의 개척 목사이다. 커넥서스 교회는 캐나다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교회 중 하나이다. 6백 만이 넘는 조회 수를 가진, ‘캐리 니호프 리더십 팟캐스트(Carey Nieuwhof Leadership Podcast)’는 오늘날 최고 지도자와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출연한다. 가장 최근 서적은 <Didn't See It Coming: Overcoming the 7 Greatest Challenges That No One Expects and Everyone Experience>이다. 두 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캐나다 온타리오 배리(Barrie)에서 아내 토니(Toni)와 거주하고 있다.


원문은 www.churchleaders.com 에 게시된 "5 Disruptive Church Trends That Will Rule 2019"이며, 문화선교연구원에서 비영리 목적으로 번역, 편집하여 한국교회에 소개하는 글입니다. 

2019 문화선교컨퍼런스 "교회, 문화, 그리고 미래" 자세히보고 신청하기 (이미지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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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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