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빈의 문화칼럼]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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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위기는 전환기적 위기이다. 기존 질서를 작동하게 하였던 권위가 의심받고, 사회 전 분야에 모호성이 팽배해 있다. ‘우리’라는 말 아래 행해지던 것들이 의심의 대상이 되며, ‘나’가 중심이 되는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전환기적 위기 시대의 과제는 획일적 권위주의와 상대주의적 아노미를 극복하는 것이다. 이때 ‘나 중심주의’를 넘어서는 ‘공동선’으로의 합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건강한 ‘정체성’이다. 오늘의 위기는 21세기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구성원들, 즉 우리의 개인적·사회적 차원에서의 정체성 위기이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함재봉의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위기는 19세기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했다. 조선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던 이념, 예식, 가치관, 신분과 정치체제, 국제정치체제의 붕괴에 따라 조선 사람이 급격히 해체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기적 위기에서 다섯 가지 대안이 추구됐다.

첫째는 유일한 정통 문명인 성리학을 사수하며 ‘소중화’ 의식으로 무장한 친중위정척사파의 대안이다. 이 담론은 삼강오륜과 충효사상 등 주자성리학의 핵심가치를 한국 사회의 기본으로 남겨 놓았다. 정신력(이념)만 있으면 어떤 외세라도 물리칠 수 있다는 위정척사 사상이 반자본주의와 반미를 표방하는 한국의 좌익은 물론 북한 주체사상과 닫힌 민족주의 등의 이념적 가치에 여전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함재봉의 주장이다.

두 번째 대안은 메이지 유신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한 일본을 모델로 하는 친일개화파의 대안이었다. 친일과 개화는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근본 주제다. 친일은 반민족적, 반한국적 사고와 행위를 일컫는다. 개화는 19세기 이후 한국 사람들이 추구해 온 이상이다. 함재봉에 따르면 친일개화파는 한국 근대사의 가장 큰 역설이자 한국인의 가장 큰 심리적 콤플렉스다.

세 번째 대안은 미국을 모델로 강력한 근대국가 건설을 꿈꾼 친미기독교파다. 친미기독교파는 오늘날 한국 사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함재봉의 주장이다.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자유시장경제체제, 그리고 자유개인주의가 그것을 상징한다. 네 번째 대안은 20세기 초반 볼셰비키혁명을 통해 등장한 소련의 영향을 받은 친소공산주의파였다. 기존 농촌 사회를 붕괴시키면서 물질주의와 이기주의를 촉진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공산주의는 전통 주자학적 이상향과 절묘하게 혼합되면서 한국 사회에 강력한 이념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는 것이다.

마지막 대안은 인종적 민족주의파의 그것이었다. 현재 남북한에 널리 펴져 있는 민족주의의 토대는 인종주의다. 한민족, 한겨레, 배달민족 등의 개념은 모두 한국 사람을 혈통을 나눈 단일 공동체로 간주한다. 이러한 인종주의적 담론은 다문화주의 시대를 맞아 도전에 처하고 있다. 함재봉은 1945년 광복 이후로 이러한 다섯 가지 대안이 여전한 영향을 상호 간에 미치면서 결국 오늘의 우리는 남-북, 좌-우, 동-서로 갈리게 되었다고 본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현재의 나와 우리는 과거의 나와 우리와 연속성과 차별성을 가진다. 개인과 공동체가 건강한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일은 나와 우리를 구성하는 이념과 사상의 복합적인 뿌리를 인정하면서 그것들을 절대화, 우상화하지 않는 일에서 시작한다. 무엇보다 이 땅에 기독신앙을 가졌다고 고백하는 5분의 1 이상의 신앙인들부터 자신들이 속한 세계와 경험에 얽매인 배타적 이념을 넘어서 우주의 주인 되신 하나님 안에서 우리 자신을 새롭게 발견해 가는 삶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삶은 무엇보다 자신의 경험과 이념을 넘어선 크고 기이한 신앙세계에 대한 경험을 전제로 한다. 그 어떤 이념보다 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향한 사회적 공동선을 이루어가는 이 땅의 신앙인들과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출처] - 국민일보 

문화선교연구원 CVO 임성빈(장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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