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책 <이상한 정상가족>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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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건 가족뿐이다”

사회생활이 힘들고, 조직에서 서운한 마음이 들 때 마음 속에 떠오르는 건 ‘가족’이다. 가족은 삶의 마지막 보루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가족 때문에’ 라든가 ‘가족이니까’라고 상황을 설명하면, 출렁이던 무수한 공격도 잔인해 보이게 만드는 힘이 가족에겐 있다. 

‘가족은 건드리지 마’라는 말을 무시하는 상대방은 극악무도한 파렴치범이 된다. 그렇다. 가족은 소중하고도 연약한, 나의 일부이자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넓혀보면 가족이란 말 앞에서 모든 합리적 논의와 비판이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도리어 사회적 갈등과 이기주의를 조장하는 원인 제공자가 되는 현실을 우리는 자주 목도한다. 

본서 ‘이상한 정상가족’은 바로 이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룬 사회과학서다. 절대 선처럼 여겨지는 관념의 바리케이드 너머에 은폐해왔던 가족에 대한 진실을 공론의 거리로 끌고 나왔다. 책 서문에 인용된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는 넬슨 만델라의 말처럼 ‘어른’의 관점에서가 아닌 ‘아이’의 입장에서 가족을 바라보며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이끌어 낸다. 우리가 당연시 했던 수많은 가정이란 말 속에 은폐된 문제를 하나씩 꺼내 보여주며 ‘가족’이라는 단어에 담긴 이데올로기적 폭력성을 고발한다.                                                                

우선 ‘결혼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만 이상적인 가족으로 간주하는 것이 맞는가?’ 저자는 질문한다. 실제 우리나라의 통계에도 이미 1인 가구가 가장 높은데도(4인 가족은 4번째다) 우리사회는 ‘4인 = 정상가족’이라는 철 지난 노래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정상가족’이라는 범주 안에 들어온 아이들은 완전히 안전하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실제로는 상당수의 ‘정상’처럼 보이는 가정에서 비정상적인 폭력과 위험에 아이들이 노출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둘째, 실제로 ‘정상가족’이라 칭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 대해 ‘비정상’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면서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를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안이한 진단을 내리게 만든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본서는 가족 내에서 가장 취약한 아이를 중심에 놓고 가족주의가 야기하는 문제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먼저 정상가족이라 여기는 가구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심각성을 알려준다. 2013년 칠곡의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예로 든다. 계모의 구타로 발생한 외상을 외삼촌이 경찰에 신고했음에도, 경찰은 아이들끼리의 싸움에서 발생한 실수라는 아버지의 해명만 듣고 철수한다. 이전에도 아이가 직접 신고한 전례가 있었고, 다양한 경로로 아동의 학대 사실을 인지한 어른의 수가 37명이나 됐지만, 누구도 아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은 허용되지 않지만, 아이들을 향한 폭력은 학대가 아닌 체벌로 인식하는 사회적 관습이 살인을 불러온 것이다. 여기에 아이 스스로 계속된 양육자의 폭력을 자신이 맞을 짓을 했다는 식으로 내면화시키는 가해자의 논리도 한 몫 한다. 학대와 정반대라 생각하는 과보호도 문제다. 자녀의 놀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고 부모가 일방적으로 과도한 사교육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언론 역시 이러한 왜곡에 일조한다, 미성년 자녀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동반자살’이라 칭한다. ‘정상가족’의 ‘비정상적 행태’가 ‘친권’이라는 이름으로 법과 사회의 개입을 막고 있는 형국이다. 

원인은 뭘까? 부모는 '친권’을 자녀를 보호하고 가르칠 ‘의무’로 보지 않고 자녀에 대한 처분 ‘권리’라고 잘못 인식하며, 사회는 가정이라는 작은 배에 너무 많은 책임을 전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별히 저자는 과도한 가족주의의 원인이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 사회안전망을 확보하지 못한 채 모든 사회보장과 복지 서비스를 가족에게 떠넘기며, 가족의 희생 위에서 압축성장을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 과정에서 서두에 언급했던 ‘믿을 건 가족뿐’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더욱 가족의 단결을 불러일으키는 추동력을 갖게 되고, 결국 한국사회는 개인이 아닌 가족단위로 사다리에 오르는 사회가 되어버렸다고 보았다. 이러한 가족주의가 사회 영역으로 연장, 확대되면서 회사나 학교 모임도 자신이 속한 내內집단의 구성원들을 마치 가족 구성원처럼 대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되었고, 서로에게 충성과 헌신, 공동체성과 집단성을 강조하며 수직적 서열구조를 정당화시키는 근거가 되어 가족에게 떠넘긴 과도한 책임의 부작용이 다시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악순환의 구조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제기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가족에게 과도하게 이양된 짐을 사회가 나누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40년간의 사회적 논의를 거치며 점진적으로 제도와 사회적 인식을 개선했고, 그 결과 2000년 이후에는 학대로 숨진 아이들이 거의 없는 괄목할 만한 사회적 변화를 이뤄낸 스웨덴을 그 예로 들고 있다. 단순히 아이들만의 보호로 끝나지 않고 자발적 부모 되기, 양성평등, 아동권리의 실현 이라는 세 가지를 국가가 지원해주며 통합적인 가족정책을 완성했고, 그 결과는 한국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출산율이 스웨덴의 현 인구를 유지할 수 있는 2.0명 안팎에 머무르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양육 또한 ‘여성정책’이 아닌 남녀 불문, 기혼∙비혼 불문, 가족의 형태 불문, 아이를 키우는 모든 사람이 지원을 받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이렇게 정상가족 안에 잠재된 비정상적 요소와 가족에게 쏠린 책임을 덜어주며 아이들에게 더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일관된 논조와 사례, 대안까지 제시한 점은 본서의 큰 장점이다. 하지만 범위를 좀 더 넓혀 다뤘으면 했던 이주민이라는, 한국사회에 이미 들어와 있는 수많은 가족들에 대한 논의가 충분치 못해 아쉽다. 허나 이것을 저자의 탓으로 돌릴 순 없다. 가장 기본적인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조차 법안 발의는커녕 가장 근래였던 2017년 대통령 선거 공약에도 올릴 수 없을 정도로 이 땅의 이주민에 대한 혐오와 증오가 광기처럼 활보하는 탓이다(법안 발의가 좌절되는 과정이 p.147 '한국에서 피부색이 다른 가족이 산다는 것의 의미‘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니 읽으며 자성의 기회로 삼아도 좋겠다).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어떤 자세로 약자와 타자를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엡 3:6). 

지극히 작은 자, 아이와 여성을 환대하셨던 예수님.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칭하며 소명으로 섬겼던 바울. 그렇게 복음은 은폐된 차별과 폭력의 장막을 걷어내고 온전한 가족으로 우리를 초청한 이들에 의해 세상에 그 진정성을 드러내왔다. 때론 시대의 편견에 동조하고, 교회 스스로가 커다란 장벽이 될 때도 많았지만, 늘 그렇듯 소수의 깨어난 양심들이 얼룩진 복음의 누명을 벗겨내며 역사의 진일보에 의미있는 족적을 남겨왔음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2018년의 대한민국, 그리고 교회 역시 그 길이 요원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 할 이유는 복음의 정신은 수(數)가 아니라 도(道)를 따른 이들에 의해 드러난다는 진리 때문이다. 작은 자를 소중히 여기며 함께 살아가기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한 이 때에 본서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필자 소개 : 성현 목사

필름포럼 대표로 섬기고 있으며, 창조의 정원의 담임목사이다. 팟캐스트 <가스펠 북카페>(바로가기)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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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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