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으로 영화 <아이 캔 온리 이매진> 읽기 - 화해의 힘, 그리고 상상의 힘



반응형


상상의 힘을 노래하는 음악 '아이 캔 온리 이매진',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다

이 영화에 관련해서 가장 많이 회자된 두 말을 꼽는다면 “전설적인 밴드 머시미(Mercy Me)”와 “리드 보컬 바트 밀라드(Bart Millard)”이다. 기적 같은 일은 양자의 조합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 제목이기도 한 노래 “I can only imagine”은 머시미 밴드와 보컬 바트 밀라드의 대표곡이다. 상상의 힘을 노래하고 있는 이 곡은 CCM으로서 종교음악 분야에 속한 노래이지만 종교의 경계를 넘어 전 세계 많은 음악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음악 인기와 판매량 순위에서 얻은 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밴드와 보컬의 이름이 동시에 회자되는 이유이다. 영화는 바로 이 곡이 태어나게 된 배경을 담고 있다. 

회심,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 고난 중에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등 수많은 성경적인 주제들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기독교인을 넘어 이 노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울림을 주고도 남을만한 호소력이 짙게 덧칠해져 있다. 극영화로서 기독교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곡자요 작사자이면서 또한 보컬로서 노래를 부른 바트 밀라드는 다른 어떤 곡들에 비해 이 곡을 보다 쉽게 썼다고 말한다. 아버지 장례를 마치고 잠시 헤어졌던 밴드와 다시 합류해 연주 여행을 떠나는 차 안에서 영감을 얻어 급히 쓴 곡이다. 그러나 이 곡에 담겨진 영혼의 배음과 깊이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의 말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음악 팬들에게 이 곡은 단지 작가의 천재성을 확인해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삶에 대한 궁금증을 더 크게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이 곡은 그동안 힘들게 인생을 짊어지고 살아왔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주었으며 상처를 입고 삶의 전망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치유가 되고 또한 삶의 용기를 북돋아 주었기 때문이다. 음악팬들의 인기를 말해주는 챠트에서 기록적인 순위가 오래 지속되었다는 사실은 이런 일들이 한 순간의 경향이 결코 아니었음을 입증한다. 음악적인 분석만으로는 재구성하기가 쉽지 않은 영성의 울림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바로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작곡 작사자이며 가수인 바트 밀라드가 지나온 삶의 여정에 더 큰 비중을 두고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화는 바로 이런 한계와 의문으로 시작한다. 바트 밀라드는 어떻게 이곡을 만들 수 있었을까? 



영화 속으로

(스포일러 있음)

바트 밀라드의 어린 시절은 가정폭력으로 얼룩져 있다. 바트의 아버지는 과거 잘 나가던 미식축구선수로서의 실패를 인생의 실패로 받아들였으며, 그 결과 자신의 좌절과 분노를 가족폭력으로 대체하며 살고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어린 바트에게 유일한 위로이자 돌파구는 다른 세상을 상상하며 음악을 듣는 일이었다. 매 순간 바트는 상상했고 또 음악을 들었다. 매를 맞고 난 후에도 그리고 엄마가 매 맞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바트는 다른 세상을 상상했고 또 음악을 들었다. 폭력이 난무하는 순간에 평안과 기쁨의 세계를 상상했던 것이다. 매 순간 그랬다.

엄마가 집을 나가자 바트는 아버지의 폭력 때문이라고 믿고는 아버지를 증오한다. 그렇다고 집을 떠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미식축구 선수의 길을 선택한다. 그런데 운동 중에 골절상을 입어 더는 운동을 할 수 없게 된다.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했기에 친구들의 권유로 바트는 교내 합창단에 들어간다. 이곳에서 바트는 자신의 음악성을 발견하고 뮤지션으로서 미래를 꿈꾸지만 아버지로부터 무시를 당한다. 아버지가 자신의 재능과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와 언어폭력을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바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 

생존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곡을 써나가던 바트는 우연한 기회에 무명의 밴드와 합류해서 보컬로서 활동할 기회를 얻는다. 밴드는 그와 합류하면서부터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음반 회사 사장들로부터 전문 음악인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한참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트는 사람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고 있음에도 이런 평가를 받게 되자 자존심에 큰 타격을 입고 밴드를 포기하려고 한다. 그러나 매니저와 대화하면서 자신이 음악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가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임을 깨닫고는 집으로 돌아가서 회복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 

이 장면은 돌아온 탕자의 장면을 연상케 하는데, 비록 성경 속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아니었지만, 집을 나선 후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돌아온 것이나, 그곳에서 회심한 기독교인으로 변해 있는 아버지에 의해 대대적인 환영을 받는 모습은 영락없이 탕자의 귀환이었다. 아버지는 회심 후 아들이 돌아오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술회한 바에 따르면 바트는 자신이 상상하던 모습을 아버지에게서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바트는 스스로를 돌아온 탕자로 여길 생각을 하지 않았고, 몰라보게 변한 아버지가 오히려 낯설게 여겨져 불편할 뿐이었다. 아버지의 폭력은 그의 기억 속에서 아직도 진행 중이었고 또한 그로 인해 자기 안에 있는 증오를 떨쳐버리지 못했기에, 아버지의 변한 모습을 보면 볼수록 바트는 더욱 힘들어지기만 했다. 문제는 아버지의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자신에게 있음을 바트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도저히 자기 안의 증오가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고 판단한 바트는 다시금 집을 떠나려 한다. 그런데 우연히 아버지가 췌장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로 바트의 마음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 바트는 어렵게 아버지의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보게 되는데, 마지막 여정을 앞두고 있는 아버지와 화해의 삶을 보낸다.  

장례 후 바트는 집을 떠나기 전 짐을 정리하면서 그가 어렸을 때에 적은 일기장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가방에 넣는다. 밴드와 함께 떠나는 차 안에서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중에 자신이 힘들 때나 기쁠 때나 매 순간 상상했고 또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때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I can only imagine”을 쓴다. 이 노래는 바로 그가 어렵고 힘든 형편과 처지에서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고 또 하나님의 영광을 상상함으로써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상상을 통해 이곳에서 하나님의 영광 안에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음을 고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이 캔 온리 이매진'이 탄생하기까지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바트는 어떻게 이런 곡을 쓸 수 있었을까? 물론 바트의 인생이 녹아 있는 곡이기 때문에 오직 바트만이 쓸 수 있는 곡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바트와 비슷한 일을 겪으며 지내는 뮤지션이 왜 없겠는가.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며 작품을 써나간 작가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이런 기회가 바트에게 현실로 나타난 것은 자신의 한계에 직면해서 그 원인을 바로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지 싶다.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그가 자기 안의 증오를 깨닫지 못했다면, 그래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돌아가지 않았다면 그리고 화해하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안에 있는 미움과 증오는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일을 가로 막는 방해요소다. 우리가 용서하고 오히려 원수라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 자신을 통해 일하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바트가 인생의 한계에 직면했을 때 내면의 음성에 귀 기울일 수 있었기 때문에 바트는 아버지에게 돌아갈 수 있었고, 그 결과 그토록 훌륭한 곡이 태어날 수 있었다는 것, 이것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메시지다. 바트는 바로 이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끝으로 한 가지 덧붙인다면, 상상이 갖는 기독교적인 의미이다. 영화가 상상을 중심 소재로 삼고 있으니 이것과 관련해서 기독교적인 의미를 성찰하는 건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바트는 상상을 통해 하나님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상상할 수만 있었던 일을 놀랍게도 아버지와 자신의 화해를 통해 현실로 경험할 수 있었다고 노래한다. 상상은 분명 공상과 다르다. 공상은 현실의식이 떨어지지만, 상상은 현실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이다. 물론 상상 자체가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상상한 세계를 현실로 경험하게 된 이유는 그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상이 없었다면 그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었겠는가. 

미국 신실용주의자로 알려진 리차드 로티는 현대를 ‘문학[예술]의 시대’로 규정하고 이 시대에 작용하는 지배적인 힘은 상상력이라고 말했다. 상상력이 시대의 패러다임을 이끌기 때문에 상상력을 결여한 사람은 이 시대의 지도자가 되기에 부족하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기독교에서 상상과 관련해서 가장 큰 관심을 끄는 것은 하나님나라다. 하나님나라는 누구도 볼 수 없고 또 규정할 수 없는 세계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이곳에서 매순간 경험하도록 허락된 세계이다. 이것을 현실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건 믿음에 근거한 기독교적인 상상력이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비현실적이라 해서 그것을 상상하는 것에 사람들은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상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식과 정보는 난무해도 그 나라를 갈망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은 것 같지 않다. 과거 신앙의 선배들이 하나님나라를 상상하며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고 또한 번영과 안정에 대한 유혹을 이겨냈던 사실을 우리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 상상이 현실이 될 때 이론이 형성되고 또한 삶의 변화가 일어난다. 그동안 기독교 상상력은 경직된 교리에 의해 혹은 과학적인 상상력에 의해 억압되었다. 상상력이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작용하는 이 시대에 반드시 변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나라를 상상할 수 있도록 고무하는 교리, 곧 열려 있는 교리를 추구할 때가 아닐지 싶다. 


최성수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반응형
카카오스토리 구독하기

게 시 글 공 유 하 기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밴드

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미지 맵

    웹진/문화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