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빈의 문화칼럼]문명과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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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경우를 본다면, 계몽주의 시대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한 세속화의 거센 물결이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교회를 주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이전만 해도 교회로 대표되는 종교가 정치·경제의 영역뿐만이 아닌 의료·과학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른바 이성의 시대 도래는 계시를 우선했던 종교의 시대가 급속히 축소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자연의 ‘탈마법화’, ‘분화’ 등의 용어들로 설명하고 있다. 사회는 종교로부터 급속도로 독립하기 시작했고, 일상적인 삶의 틀은 종교가 아닌 과학이나 정치·경제적인 담론들에 의해 재편되기 시작했다. 결국 공공의 영역은 이성과 경험을 토대로 하는 인본주의가 주도하게 되었고, 종교는 개인적인 일에만 관여하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현상을 ‘세속화’라 부르며 이에 동반되는 현상을 신앙의 사사화(privatization)라 부른다.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사회와 종교의 관계 설정을 조망할 수도 있다. 하버드 대학 역사학 교수인 니얼 퍼거슨은 저서 ‘시빌라이제이션’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그는 500년 전만 하더라도 명나라가 통치하던 중국에 비해 영국을 비롯한 유럽이 낙후된 상황이었음을 지적하면서, 어떻게 서양이 16세기 이후에 문명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예컨대 내부 지향적인 명나라와 달리 작은 나라들로 나뉘어 있었던 유럽 사회가 가졌던 경쟁 장려 체제의 우수성, 그러한 경쟁이 촉발한 17세기 이후의 과학 혁명, 재산권을 기초로 한 대의제와 법 체제, 건강 증진과 수명 연장을 담보하는 의학 발달, 생산을 더욱 촉진시킨 소비사회, 그러한 사회의 건강성을 뒷받침해주는 개신교의 직업윤리 등의 요소가 서구 문명 발달의 주요 배경이라고 퍼거슨은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매우 서구 중심적 역사 해석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세계화라는 오늘의 현실을 생각한다면 곱씹을 만한 점이 적지 않다. 특별히 문명화에 대한 그의 관찰에서 우리 사회가 처한 위기의 본질을 보게 된다. 경쟁의 공정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자연과학이 경영학이나 의학에 비해 경시되며, 대의제와 법 제도의 정당성과 효율성도 상당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 그러하다. 또한 소비사회는 가속적으로 발달하는데 비해 우리의 노동과 직업윤리는 그만큼 성숙해지고 있지 못한 것도 위기의 원인이다. 


니얼 퍼거슨은 오늘날 서양 문명, 특별히 유럽의 쇠퇴가 일정 부분 기독교의 쇠락과 맥을 같이하고 있음을 간파한다. 그는 노동과 직업윤리, 사회적 가치의 토대를 제공했던 기독교의 영향력 감소가 사회와 도덕의 혼란과 상관관계에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유럽과 우리나라는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나라와 민족을 향한 종교의 사회적 책무는 사회와 공동체의 가치와 윤리적 토대를 제공함에 있다. 아무리 정치·경제적으로 풍요하다고 할지라도 건강한 가치와 윤리가 무너질 때 그 사회와 문명은 쇠락하고 만다는 것이 준엄한 역사적 사실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종교인보다 무신론자가 더 많아지고 있다. 기성 종교에 대한 실망과 반발이 특히 젊은층에서의 무신론자를 증가시키고 있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의 증가에 대한 사회적 의미는 또 다른 과제다. 과연 욕망과 자기중심적 경험에 의지하는 인본주의의 득세와 그것마저 무력화하는 거대한 데이터의 흐름과 알고리즘 맹신으로 상징되는 이른바 ‘호모 데우스’의 부상은 우리 사회에 진정한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이 문명적 전환 속에서 우리 사회의 최대 종교가 된 교회와 신앙인의 책무는 그래서 더욱 무겁고 의미 있게 모색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응답은 무엇보다 신앙인다운 믿음과 그 믿음에서 비롯된 가치와 그에 걸맞은 삶으로 시작돼야 할 것이다.


문화선교연구원 CVO 임성빈(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출처=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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