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회담 이후 - 북미 동상이몽 vs. 다가오는 진실의 순간




북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은 2000년 10월 12일 북미 공동코뮤니케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의 일부 내용을 발췌하고 편집하여 만들어졌다. 공동합의문의 4개항 중, 평화·번영의 염원에 맞춘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영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한국전 미군 포로·실종자 유해 발굴은 북미 공동코뮤니케의 문안과 유사하고, 북한의 판문점 선언 재확인과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노력은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남북한의 공동 의무 중 북한의 의무만을 다시 상기시킨다. 문안으로만 평가한다면,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과거 합의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북한의 선전을 종합하면, 몇 가지를 추론할 수 있다. 첫째, 양국은 북한 비핵화와 관련된 모든 쟁점을 한꺼번에 해결하기보다는 단계적으로 처리하기로 양해하였다. 북한 핵능력은 현존하는 핵탄두와 탄두 생산능력, 핵탄두를 투사하는 능력과 투사체의 생산능력, 보유한 핵물질과 생산능력 등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북한의 비핵화는 여러 쟁점을 포함한다. 양국은 북한 핵능력을 단계적으로 제거하며 동시에 보상을 제공하는 방식에 서로 의견을 모았다고 추론된다.  

둘째, 양국은 동일한 단어에 상이한 의미를 부여한다. 북한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하여 노력하겠다고 확약했지만, 북한이 해석하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미국이 해석하는 한반도의 비핵화가 동일하지 않다. 북한이 의미하는 한반도의 비핵화는 한반도에 핵무기를 반입하거나 배치를 금지하는 협소한 의미부터 외국 핵전력이 한반도 인근 수역에 진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포괄적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반면, 미국 측에서 언급되는 한반도의 비핵화는 북한 대륙 간 탄도미사일 해체와 비핵화 원칙에 대한 합의를 포함하는 느슨한 해석과 북한 핵능력에 관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구체적으로 핵무기의 영구적 해체, 군사적 목적의 우라늄과 플루토늄의 생산·농축 중단, 핵 실험장과 연구·농축 시설 등 핵무기 관련 시설의 영구적 해체, 탄도미사일 실험 전면 중단 및 해체, 장소와 시간 등에 구애받지 않는 사찰과 불이행 시 제재 재개 조치 등을 포괄함)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다. 가장 중요한 용어에 대한 합의가 없으니, 지난 북미 정상회담은 양국 간 대화의 출발점 수준으로 평가될 수 있다.

셋째, 양국은 상대방의 진의를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방의 신호를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한다. 협상이 타결되기 위해서는 일방만이 알고 있으며 상대방에게 감추고자 하는 정보량이 줄어들어야 하는데, 미국은 아직 북한의 핵능력과 관련된 정보는 물론 북한이 핵능력을 폐기할 의지가 있는지 여부조차 모르는 듯하다. 북한은 북한이 이해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하여 미국이 어느 정도까지 양보할지 모르는 상태이다. 즉, 양국은 서로 상대방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방을 살아가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하였다. 협상이 타결된 이후 협상 결과를 서로 지키도록 만들기 위한 장치는 아직 고려조차 되지 못하는 상태다.

상기 세 추론을 종합하면,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에 관한 양국의 양해는 양국간 대화가 진행될 환경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북한의 비핵화는, 특히 CVID 방식으로 처리되는 비핵화는, 일괄 타결로 해결될 수 없을 만큼 복합적인 목표이다. 협상 전 정치적 수사로, 또는 협상의 초기 북한의 의중을 탐색하는 시기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CVID와 일괄 타결을 언급할 수 있겠지만, 실제 협상 과정에서 CVID와 일괄 타결은 협상 자체를 진행할 수 없게 만든다. 따라서, 북한 비핵화의 쟁점을 쪼개 단계별 협상을 진행하기로 양해한 것을 비판할 수 없다.

반면, 북미대화의 전망에 대해서는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양국이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양국 간 해석 차이를 이해하는 단계에 있는데, 양국에게 서로 용인 가능한 타결점이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인다. 양국 정상 사이에서 용인 가능한 타결점하여 합의가 도출된다 하더라도, 미국 내 비준과 동의를 얻어내기 어렵게 보인다. 만약 미국 내 비준과 동의를 얻는 합의가 도출된다면, 이 합의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실망은 이제 더 이상의 의미가 없다.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낼 수 없는 구조적 한계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되었고, 정상회담 전 미국으로부터 나왔던 신호는 현상에 대한 미국식 해석을 담고 있었을 뿐이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으로부터 조금 더 양보를 얻어낼 수 있는 여지가 있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향후 협상에 유리한 발언을 할 수 있었겠지만, 북미 정상회담과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이미 기정사실이다. 기정사실에 대한 아쉬움은 오늘과 내일을 위한 지침이 되지 못한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상태이고 타결 가능성이 낮은 북미대화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미 진행된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가 미진하다는 이유로, 현재 구도상으로 타결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북미대화를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전혀 없다. 북미대화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하여 미국이 어느 정도까지 노력하고 양보할지 여부를 가늠하고, 북한이 비핵화의 수준을 어느 정도까지 하는지 알게 되는 계기다. 양국 간 대화는 감추었던 양국의 진의가 조금씩 드러나게 계기로서 의미를 가진다. 덤으로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북한이 핵 활동을 동결한다면, 북한의 핵능력 증가를 늦출 수 있다.

북미대화를 미덥지 못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북미대화가 귀결될 결과에 모두 대비해야 한다. 협상을 통하여 북한의 비핵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이 드러날 때를 대비한 계획을 소리 없이 준비해야 한다. 대화국면에서 요란하게 북한의 핵위협을 대비하는 준비를 진행할 수 없지만, 도상 계획은 미리 준비할 수 있다. 북한의 비핵화가 부분적으로 이루어진 결과도 대비해야 한다. 북미대화를 통하여 북한이 핵무기를 더 이상 선제공격이나 위협 수단이 아니라 억제수단으로 사용하는 정상국가처럼 행동하게 될 수도 있다. 이 결과는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수용 불가지만, 과거 미국이 보인 행태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동시에 가능성이 약해 보이지만, 북미대화를 통하여 북한이 비핵화가 될 경우까지 고려해야 한다. 북한의 문이 열릴 때, 북한 주민에게 가장 좋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또한 한반도에서 평화가 정착될 수 있는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조동준 교수(서울대 정치외교학부/한반도평화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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